해외로 출국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권이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서 단순 신분 증명뿐만 아니라 출입국심사, 행정 업무에까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이 여권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각국의 봉쇄가 늘어나며, 아예 입국조차 안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입국하더라도 2주 이상의 격리가 요구되어, 여행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특히 여행업 숙박업 요식업을 비롯, 관광 산업은 거의 재난적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각국에서 ‘백신 여권’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백신 여권'은 쉽게 말해, 백신 접종자에게 발급하는 면역 증명서로, '백신 여권' 소지자에 한해 국내외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특히 여행업 비중이 높은 유럽 정부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 업계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과 캐세이퍼시픽항공은 코로나19 검사 결과 등 내용을 담은 건 강 앱 '커먼 패스'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싱가포르항공과 알리아탈리아항공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IT 기업들도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을 활용해 위조와 변조가 어려운 '백신 여권' 시스템 개발 단계에 이미 와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도 여러 IT기업, 의료기관 등과 제휴해 '스마트 의료 카드' 개발을 시작했다.
정부 차원을 넘어, 기업들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생존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신 여권'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백신 여권'이 도입되면 식당, 호텔 문을 다시 활짝 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연, 전시회 등 각종 문화 행사와 스포츠 경기, 회의, 이벤트 등을 개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백신 접종의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국가에서는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발빠르게 도입한 나라들도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난 1월 21일, 세계 최초로 디지털 백신 접종 증명서를 선보였다. '백신 여권'을 갖고 있는 유럽연합(EU)이나 솅겐 지역에서 오는 여행자들에 대해 입국 규제 및 자가격리를 하지 않을 계획이다.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이스라엘 정부는 올해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인 ‘그린 여권’을 발급하고 있다. 우선 키프로스와 협정을 맺어, 이스라엘에서 발행하는 '그린 여권'만 있으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관광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도 여름까지는 '백신 여권'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헝가리 덴마크 스웨덴 등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백신 여권이 새로운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가난한 나라 70개국의 백신 접종률은 올해 말까지 10%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부자 나라들은 현재 임상 시험 중인 백신이 모두 승인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연말까지 인구 3배 규모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여권이 본격화되면 가난한 나라 출신들은 입국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는 얘기다.
의학적으로도 반론이 거세다. 프랑스 약물투명성 관측기구(OTMed)는 "현재 승인된 백신은 감염자의 중증화를 줄여주는 효과는 있지만 감염 자체를 방지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나온 백신이 100% 코로나19 감염을 막아주는 백신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다. 또한 본인은 감염되지 않을 지라도, 오염된 개체를 가져와 바이러스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럽위원회 마로슈 세프초비치 부위원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백신 접종을 받고 싶지 않거나 의학적 이유 등으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격차, 차별, 권리와 자유 제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백신 여권'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코로나19 시대의 유일한 대안이기에 도입은 기정사실화 되어 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백신 여권' 도입에 대해 지금부터 논의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장영욱 위원은 "백신을 맞았다는 증명을 해주는 공식 문서를 발급해주는 건 백신 접종을 시작한 모든 나라에서 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곧 접종이 시작되는 만큼, 발급 받은 증명서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구상과 함께, 백신여권에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한국의 질병관리청에서 현재 용역을 통해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며, QR코드를 통한 백신정보는 물론, 건강 정보를 더욱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는 완성돼 있는 단계이기에, 백신접종이 무르익고, 국제적인 공감대만 형성되면 '백신 여권' 도입은 시간 문제인 셈이다.
평범했던 일상, 떠나고 싶을 때,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립기만 하다.
'백신 여권'은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세계인들의 희망이 담겨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백신 여권'을 들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