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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 벽두부터 프랑스 최상위 엘리트층을 대표하는 명문클럽 ‘세기(Le Siècle)’가 성추문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클럽회장 올리비에 뒤아멜(71세)의 의붓아들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탓이다.
 
 
전반적으로 신축년 국제정세도 심상치 않은 기류이다. 지난 1월 7일을 기점으로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정상들이 줄줄이 사임했다. 아마존 등 빅테크, 미디어 혹은 다국적 제약회사 CEO들의 사임 소식, 그런가 하면 로스차일드 가문 상속자, 바티칸 교황의 주치의 등 특정 유명 인사들이 심장마비 혹은 코로나감염으로 갑작스레 사망하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미얀마 군부쿠데타, 러시아와 인도 시위 등으로 지구촌은 여전히 들썩이고 있다. 
이처럼 예사롭지 않은 국제기류 속에서 프랑스에서는 공교롭게도 명문클럽 ‘세기’ 회장이 아동성애 추문에 휩싸이면서 지난 1월 11일 사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프랑스의 ‘빌더버그’ 
 
‘세기(Le Siècle)’는 프랑스를 움직이는 실세들의 사교모임이다. 장관급 고위관료, 대기업 CEO, 금융가, 법조인, 저널리스트, 문인, 연예계 스타, 아티스트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시사주간지 뉴벨옵스(l’Obs) 2월 4일자에 따르면, 현재 마크롱 정권에서 내무부, 국방부, 노동부, 교육부, 교통부 등 11개 부처 장관들이 ‘세기’의 회원이다. 엘리제궁의 비서실장, 에두아르 필립 전 총리도 마찬가지이다.
 
즉 ‘세기’는 ‘프랑스의 빌더버그’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빌더버그에 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미국, 유럽, 중동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 왕족, 금융계 거물들이 국제문제를 논의하는 친목 회의로 알려져 있다. 이들 가운데 데이비드 록펠러,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등이 있으며 국제여론을 좌우하는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기업 CEO들도 관련되어 있다. 
 
빌더버그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대표적인 실례를 들라면 단연 빌 클린턴의 경우이다. 그는 1991년 아칸소 주지사 신분으로 처음 빌더버그 회의에 참석했고, 불과 2년 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케이스이다. 
빌더버그에서 거론된 회의내용은 외부에 일체 보도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프랑스의 ‘세기’ 역시 일반인들에게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곳에서 거론된 의제들은 극비로 취급되기 일쑤이다. 
‘세기’의 태동은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가 나치로부터 해방되자 저널리스트 베라르-꾀랭(1917-1990년)은 파리 자택에서 고위관료, 출판계, 미디어계 인사들과 모임을 갖는다. 바로 ‘세기’의 출범이다. 사실상 프랑스의 ‘세기’ 클럽은 네덜란드 빌더버그 호텔에서 1954년에 출범한 빌더버그 회의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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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제 5공화국 권력의 온상지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는 나치 콜라보, 코뮤니스트, 레지스탕스 혹은 드골파 등 여러 갈래로 분열된 사회분위기에 휩싸인다. 기름과 물처럼 화합되지 않는 진영논리에 의한 갈등 속에서 ‘세기’는 좌,우 온건파와 중도파를 지향하는 엘리트들의 모임이라는 기치를 내건다. 여러 분야의 지도급 인사들이 한 곳에 모여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정치, 사회, 역사적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기’ 회원들은 점차적으로 정부 고위직에 투입된다. 1958년 10월 출범한 제5공화국 초창기 정부요직의 20% 가량은 ‘세기’ 회원들이 차지했다. 이어서 레이몽 바르 내각(1978-1981년)은 58%, 미테랑 좌파정권과 동거정부를 구성한 발라뒤르 우파내각(1993-1995년)에서는 무려 72%라는 전무후무의 기록을 세우기까지 했다. 
 
▶ ‘세기의 만찬’
 
현재 ‘세기’ 회원은 약 600여 명으로 집계된다. 관례적인 주요 활동은 매달 4번째 수요일에 갖는 만찬모임으로 장소는 엘리제궁과 근접한 파리도심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 33번가의 고풍스런 리셉션장이다. 7,8명이 둘러싼 원탁 테이블들에서 오고간 대화들은 외부로 새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보안조치가 취해진다.
프랑스 주류언론이 아주 드물게 ‘세기’의 만찬 소식을 전하기도 하지만 갈증만 일으키는 맛보기에 불과할 뿐이다.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그만큼 각종 음모론이 생겨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권력창출을 위해 정계, 재계, 미디어계가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장소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60년 전부터 관례적인 행사인 ‘세기’의 만찬은 2019년에는 그 유명한 시위대 ‘노란조끼(Gilets jaunes)’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1인 미디어가 2019년 2월 27일 수요일 저녁 촬영한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independenzawebtv)을 보면, 노란조끼 시위대 15여명이 만찬장 건물 앞으로 모였고, 이들보다 더 많은 경찰력과 차량이 동원되는 바람에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는 일대 대혼잡을 빚었다.
‘세기’의 마지막 만찬은 2020년 2월 26일 수요일,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사교모임은 중단된 상황이다. 이 모임에는 250여명이 만찬에 참석했다. 
 
▶ 아동성애 추문에 휩싸인 프랑스 상류층
 
올리비에 뒤아멜이 ‘세기’의 회장직에 오른 것은 2020년 1월. 그는 오래 전부터 회장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불태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만찬 모임을 주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1년 후 급기야는 성추문으로 회장직을 사임하기에 이른다. 
 
뒤아멜은 파리 시앙스포 명예교수이자 언론인으로서 매스컴에 자주 출현했던 유명세를 지닌 인물이다. 중도좌파가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정도이다. 퐁피두 대통령 시절 장관직을 세 차례 역임한 자크 뒤아멜의 아들이다. 
 
뒤아멜 스캔들은 그의 두 번째 부인의 딸 카미유 쿠슈네르(45세)를 통해 지난 1월초에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카미유 쿠슈네르는 어린 시절에 의붓아버지가 남자 쌍둥이 형제를 범했다고 폭로했다. 1980년대에 발생한 일이며, 당시 뒤아멜의 의붓아들은 13세였다. 
 
카미유 쿠슈네르의 친부는 베르나르 쿠슈네르 전 외교부장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친부는 1977년에 12, 13세 어린이들과 연루된 성추문으로 재판받던 작가 가브리엘 마츠네프(84세)의 무죄석방을 위해 탄원서에 사인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마츠네프는 자신이 아동성애자라는 사실조차 숨기지 않았던 인물이다. 
 
한편 ‘세기’ 클럽 임원진들은 뒤아멜 스캔들이 불거지자 즉시 긴급 임시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정재계, 법조계, 금융계의 굵직한 인물들이 참여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며 어떠한 형태로든 성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고 이례적으로 공식성명을 발표했다. ‘세기’가 태동된 이래 처음으로 외부에 전달된 성명서이다. 
 
몇몇 임원들도 뒤아멜의 뒤를 이어 사임했다. 이들 중 뒤아멜과 40년 친분관계인 변호사 쟝 베이유(73세)가 포함된다. 그는 유명한 여성인권운동가 시몬느 베이유의 아들이다. 그는 뒤아멜의 의붓아들 사건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업적 비밀을 지켜야했다”고 변명했다.
 
‘세기’의 다른 임원진들은 뒤아멜 사건이 불거진 지난 1월 4일 이전까지 전혀 몰랐노라고 주장했다. 변태적 아동성애자가 프랑스 최고엘리트층을 대변하는 회장직에 역임하도록 묵인했다는 사실 역시 심각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결국 뒤아멜 사건은 파리 명문대학 시앙스포까지 불똥이 튀고 말았다. 뒤아멜 사건을 지난 1월 6일 처음 알았다고 주장했던 프레데릭 미옹 시앙스포 대학 총장은 결국 2월 9일 총장직을 사임해야 했다. 대학 고위관료들이 뒤아멜과 관련된 정보를 입수한 것은 2018년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항간에서는 신축년 벽두부터 불거진 뒤아멜 스캔들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공교롭게도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지구촌 곳곳에서 아동성애, 아동납치와 인신매매, 마약과 관련된 범죄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요동치는 국제정세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각각 하나로 고립하여 바라보지 않고, 어디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이병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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