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 만났지만 계속해서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
딱 한번 만났으니, 잘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머리쯤에 이르러서는 '아, 그 사람'하고 이해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추억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간조선 사무실에서 한 여성기자와 만났다.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설 때, 그가 차 한잔 마시자고 제안했다. 옆 건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커피 한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28년 전 일인데도 또렷했다.
수수한 용모, 잔잔한 말솜씨, 행동거지가 반듯했다. 얌전한 모범생, 대화 또한 간단하나 적확했다.
짧은 대화 속에서 외유내강형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겸손함, 자제력(필요한 말만 하는), 정의감 등이 느껴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후 궁금했다. 과연 그는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파리에 돌아온 후, 그가 쓰는 기사를 읽거나, 출장 오는 매스컴 종사자에게 그 후의 소식을 들었다. 5년 후인 1999년, 하버드 대학에 유학갔다는 근황을 들었다. 2년 후, 학위를 마친 뒤 귀국해서는 일간지로 옮겼다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나갔다고 했다. 그 해에 아들 부시의 제 2차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그는 종군기자로 이라크에 갔다. 한참 후에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사막의 전장터에도 장미꽃은 핀다"라는 책을 펴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후, 국제부장, 논설위원,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하며 국내와 워싱턴을 오가는 직책을 가졌다. 지난해까지는 'TV조선'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를 진행했다.
지난 5월 10일, 깜짝 놀랄 일과 만났다. 새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그가 등장한 것이다. 줄곧 매스컴에서만 일하다가 정치권, 그중에서도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등장한 것이 의외였다.
이제 티비, 유튜브 등을 통하여 여러분 또한 만나게 될 그의 이름은 강인선. 많은 세월 후에 화면을 통해서 보는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올해 59살, 28년 전과 비교할 때 크게 변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과거 청와대 대변인들처럼) 장관직, 또는 이에 버금가는 직책으로 옮겨가게 될까. 새로운 궁금함의 시작이다.
[프랑스(파리)] 신근수 칼럼리스트
* 강인선 대변인은...
1964년 서울생.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석사 거쳐 하바드대 행정학과 석사. 평생 조선일보와 함께 기자-워싱턴 특파원-논설위원-국제부장-워싱턴 지국장-외교안보 국제담당 에디터 등을 거쳤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관련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2008년에 한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여성들을 위해서 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용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어떻게 살아 나갈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일어야 그렇게 살 수 있어요.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세요. 그래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요." (2008.5.31. 당시 고대신문 기자 금민지 기자와의 대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