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한류의 원조 난로회(煖爐會)를 그리다!
파리 기메 동양박물관의 조선 최고 회화는 무엇일까요? 단연 김홍도(1745-1815?)의 8짝 병풍입니다. 비단에 수묵 채색하여 높이 1m 8, 폭 49cm의 그림 총 8개가 가로로 이어진 병풍으로, 김홍도가 낙관한 18세기 조선 진경 시대 풍속화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한국박물관에 있었다면 국보급 스타 반열에 올랐을 이 그림은 프랑스의 외교관 루이 마랑이 한국 여행 시 구입하여 그의 사후 부인이 기메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8폭 병풍 중 맨 오른쪽 그림이 현대인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무슨 일인지 한번 들여다볼까요 ? 화면 속에 남녀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고 시선은 가운데로 집중됩니다. 화롯불에 소고기를 지글지글 구워 설중야식하시는 우리 조상님들이네요. 하얀 눈이 소나무와 성벽 아래 소복이 내려앉은 한겨울 밤, 남자 다섯, 여자 둘이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모여 요즘 말로 회식을 하십니다. 돗자리 위 개다리소반에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밥 그릇과 작은 장 그릇이 놓여있고 그 옆에 바구니에는 흰떡 몇 개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고기 있는 곳에 술이 빠지면 안 되지요? 돗자리 맨 앞에 청자 술병도 물론 보입니다. 화면 중앙에 남색 치마와 가체를 쓴 여인이 얌전히 앉아 화롯불에 고기를 굽고 나머지는 젓가락으로 익은 고기를 집어 먹습니다. 무슨 이유로 이리도 추운 겨울밤, 흰 눈 쌓인 성벽 밑에서 버선발에 방한용 풍차를 쓰고서라도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야 하는 걸까요?
여기 모인 분들은 양반 신분의 난로회 회원입니다. 난로회는 1781년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 1782년 정조의 일기 『일성록』,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연암집』과 19세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음력 10월 조선의 세시 풍속입니다. 한양에서는 날씨가 추워지는 음력 10월에 월동 준비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동국세시기에 음력 10월 초하룻날 숯불 화로에 석쇠를 올려 기름, 달걀, 파, 마늘, 산초가루에 재워 둔 소고기를 구워 둘러 앉아 먹는 행사로 나옵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업무와 학문하는 신하들의 노고를 다독이려 난로회를 자주 베풀었고, 문예부흥 군주 답게 회식 자리에 시를 지어 보내거나 신하들과 직접 율시(律詩)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시 낭송에 고기를 굽는 궁중 난로회와 다르게 민가의 양반들은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시 빼고 고기만을 구워 드셨습니다.
김홍도, 그는 누구인가 ?
여러 고서에 따르면, 그는 학예 군주 정조의 막강한 후원을 등에 업은 국민 화가이자 국민 배우 수준의 빼어난 외모, 큰 키, 악기를 신선처럼 연주할 줄 알았고, 호연지기를 품은 조선의 천재 화가였습니다. 본관은 김해로, 중인 출신이지만 그림 재주 하나로 현감 벼슬까지 역임한 양반 기질이 농후한 만능 재주꾼이였지요. 생몰 연대가 정확하지 않아 1745년 출생하여 1815년(기메박물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세상이 다 아는 천재 화가의 사망 시기 기록이 묘연하다니 허망한 일입니다.
그래도 처음은 광대했습니다. 김홍도의 유명세는 정조와 함께 시작됩니다. 김홍도는 어용화사로 세 번의 임금 초상화, 즉 어진을 그렸습니다. 첫 번째가 1773년(영조 49, 29세) 영조와 세손(정조)의 초상을 그리는데 참여하여 정조와 처음 만나게 되고 이후 정조는 그림에 관한 모든 것은 홍도에게 맡긴다 했습니다. 두 번째는 1781년(정조 5, 37세)에 정조의 익선관 곤룡포 차림의 어진을 그렸고, 마지막은 1791년(정조 15, 47세)에 정조의 원유관 강사포 차림의 어진을 그렸습니다. 김홍도의 어진에 흐뭇해한 정조는 그에게 충청도 연풍 현감 벼슬을 주어 그의 노고에 답했습니다. 그러나 벼슬과는 인연이 짧았는지 탄핵으로 곧 물러나고 맙니다.
정조의 큰 그림, 조선의 개혁, 이것을 실현코자 왕이 직접 관할한 정치, 학문 Think Tank기관, 규장각 그리고 규장각 직속 기관 자비대령화원 (差備待令畵員)제가 있었습니다. 영조 때 어진을 담당하던 임시 화원 제도인 것을 정조는 과감하게 도화서 최고 화원 10명을 엄격한 시험을 통해 선별하여 왕 직속으로 두어 녹봉을 주었고 어진과 왕실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김홍도가 있었습니다. 정조의 화성 행차를 인공 위성 기법으로 그린 것도 그였으며, 1789년 정조의 연경(燕京·베이징) 동지사 파견 때도 김홍도는 연경 성당에서 서양화 기법을 배워와 정조가 세운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당, 수원 용주사에 서양화 원근법을 사용하여 사실주의 탱화도 그렸습니다.
사진 : 한국음식문화사전
한국음식 세계인의 난로회로 거듭나다
김홍도의 병풍 속 난로회가 지금과 다른점은 조선 시대 한복뿐입니다. 소고기 숫불 구이는 여전히 현대인에게 사랑받는 우리 음식이며, 난로회에 모인 조상님들처럼 21세기 후손들도 갖은 양념에 재워 둔 고기를 숮불 직화 구이 해서 먹습니다. 또한 18세기에 세시 풍속으로 유행했던 전통 한식이 요즘은 케이 드라마를 타고 세계인의 난로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김홍도의 사실주의 풍속화는 조선 후기의 전통 한식을 확인할 수 있고, 유서 깊은 한국 식문화의 자긍심도 고취하는 매우 중요한 해외 문화재입니다.
글 : 한미숙 mms7han@yahoo.com
현재 파리 미술사 연구소 (Since 2014) 대표
/ 파리 쉽게 배우는 서양미술사 8년 강의 중
【프랑스(파리)=한위클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