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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들을 보고--이젠 눈물도 안납니다.

by 에스뿌 posted Nov 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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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 말대로 이건 사는 것이 아니지 싶어서
아주머니의 양해를 구해
당장 단기 주거지라도 구해지지 않으면
호텔이나 민박이라도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목요일 아침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직도 어머니가 제게 늘 상 하던 말씀을 떠올리지만

“원래 사람을 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딸이 제멋대로 사람을 구해버려서 …”

시간이 지날수록 저 한마디가 묵직하게 저를 내려 깔았습니다.
무슨 말만 나오면 사람을 구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들이게 됐다고 하시니
저도 그런가 보다 지나가면 되는데
괜시리 예민해져서 울컥하는 마음이 쌓여가더라구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의 심정이랄까.

마침 날짜가 13일이어서 14일에 나가게 되면 보름치 방값을 계산하기도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저는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습니다.

“저도 가족이 죽고 경황이 없어서, 지금 정신이 없네요.
그렇다고 또 신경 쓰이게 해드리면 안되니까
따님이 오시는 금요일까지 방을 비워 드릴께요”
하고 어머니께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와서 하자고”

문제는 집을 구한다고 밤 늦게 돌아와서 자세한 이야기는 드리지 못했습니다.
다 제 불찰이지요.

하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언제 또 불호령을 받지나 않을까,
언제 또 제가 머리카락을 흘리고 다닐까
갑자기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실까봐
심장이 조마조마한 느낌 있잖아요.
스스로가 노이로제 증상을 느낄 정도니 이건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어요.

아주머니도 생판 남에게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 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시니
하루라도 서로가 빨리 떨어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일단은 주위의 충고대로 민박을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다행이 한 밤중에 올라온 근처 단기 스튜디오 주인과 연락이 되어
그 다음 날 그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게 되었죠.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다 꾸려 놓은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제가 세입자를 구하는 한 달의 기간 후에
제가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계약서 조건상으로도 아주머니가 맞는 말이었습니다.

다만 애초에 사람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는 아주머니 말과,
제가 나가면 돈은 바로 준비해준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제가 혼자 단단히 착각을 한 것이었지요.

어차피 돈이 없어도, 더 이상 전전긍긍하고 살면 이 곳에 있는 시간이
아예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그 짧은 순간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보증금은 나중에 천천히 주셔도 되구요.
보름치 325유로를 제가 포기하고 나갈 테니…그럼 오늘 이사를 할께요.”
.,
피 같은 오십 만원. 그래도 화장실 마음대로 간다고 좋아하던 어제 밤의 설레임을 생각하며
마음은 편했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왜 보름이야? 한달이지”

그러니까 지금 나가려면 한달 치 방세를 포기하고 나가라는 소리였습니다.


“어머님께서 원래 사람 안 들이시기로 하셔서 언제 나가도 상관 없는 게 아닌가요.
서로 이런 상황에서 웃으면서 살 수도 없고,
서로서로 양보해서 그냥 이렇게 이사를 나가는 게
가장 최선이 아닐까요?”

“어머..그건 그때지. 나도 계획이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원래 사람을 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들어온 추가 예산이 생겨서
그 예산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었죠.

아주머니가 받는 스트레스가 , 제가 받는 스트레스가
650유로 남짓한 돈 보다 덜 중요한 걸까요.

그렇게 자식교육이 중요하신 분인데,
남의 자식 한 번 있는 입학 시험 감안해서
조금만 계획을 수정해주시면 정녕 안되는 건가요.

650유로 그게 그렇게 큰 돈이었나요.

그럼 어차피 세입자를 들이고 살 생각이었으면 왜 저한테 계속
주입식으로
“사람을 들일 생각이 원래 없었는데…”를 각인시키게 만드셨을까요.
왜 저는 이 돈을 내고도 미안한 마음에 눈치만 보게 되었던 걸까요.

생각을 해보니 시험을 바로 친 직후에 이사를 나가는 것도 우습고,
시험이 끝난 후에 다시 한 두 달을 위해 단기를 전전하는 것도 우스워졌습니다.

이사 나가기로 한 단기 스튜디오의 주인분께 양해를 구하고
싸던 짐들을 다시 방에 풀고 아주머니께 다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주변 분들의 조언으로 나가는 일자도 서면으로 통지를 해야 효력이 있다고 해서
1월31일에 나가겠다는 서한을 아주머니께 써서
그 분의 눈앞에서 확인을 했다는 싸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주인집 아주머니께서는
즉시입주가 가능하다는 제 방의 광고를 내셨구요.

어쩌자는 겁니까 진짜.
이제 눈물도 안 납니다.
눈물도 안 난다고 말은 했는데 눈물이 나오네요.

사람을 믿을 수가 없네요. 이젠.

저도 그래도 십년 넘은 외국 생활 동안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에티켓도 몸에 배였고
나이 또래 중에서 그래도 깔끔 떨고 산다는 말을 더 많이 듣습니다.

도대체 제 다음에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모르지만
어떤 분이 과연 이 주인집 아주머니 눈에 찰지 모르겠습니다.
이 집에 청소를 하러 들어온 사람이 아닌 이상 ,
어찌 견뎌낼지 걱정이 되서 제 마음이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저야 떠나면 그만이고,
이미 한 마음고생이야
사람 사는게 다 그러니 어찌어찌 지난 일로 묻어두면 되는데

다음 사람은 제발..다음 피해자는 제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