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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3047 추천 수 83 댓글 8
여기에 이런 글 올려도 되나 모르겠지만 너무나 답답해서, 어디엔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파리에 사는 여자 유학생입니다.
제가 지금 사는 건물에 이사오던 때부터 알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건물 사람들이 다 그사람을 정신나간 여자라고 칭했었죠.
항상 지팡이를 짚고 머리는 산발, 겨울에도 신발없이 맨발로 아니면 샌들을 신고 다니는..
어떤 아저씨 말로는 어떻게 이 건물에 저런 사람이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더군요.
저도 오며가며 눈인사는 하지만 행여라도 괜히 저에게 말걸고 그럴까봐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몇주 전 시장을 봐 들어올 때 그 할머니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습니다.
솔직히 같이 있기 껄끄럽더군요. 정신이 온전한것 같지도 않은 사람인데...
저를 보고 어느나라 사람이나고 물어보시기에 예의상 웃으면서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우리말로 '사랑해'라고 하시는 거에요. 전 놀랐습니다.
자기는 'Je t'aime'를 모든 나라 언어로 다 말할 수 있다더군요.
그게 그 할머니와 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지난 주, 오랜기간 동안 갈까말까 망설이던 바캉스를 2주간 큰맘 먹고 다녀왔습니다.
즐겁게 여행지에서 돌아와 집앞에 다다랐을 때, 저희 집앞에는 소방차와 응급요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전 그냥 '여기 사는 누군가가 많이 아픈가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요.
그런데, 아파트 현관을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안에 들어설 때까지
여태까지 맡아보지 못한 역한 냄새가 건물 전체에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랫층에서 쓰레기 소각장 관리를 잘못했나보다.. 바캉스라고 남아 있는 사람 하나 없었을테니...'
하지만 냄새는 어디선가 계속 나왔고, 그 다음날 전 복도와 현관에 진을 치고 있는 경찰관들과 마주쳤습니다.
이 건물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죠.
한 경찰관 말씀.. 사고가 있었답니다 (그는 그 일을 '사고'라고 칭하더군요).
1층에 혼자살던 마담이 사망했다더군요... 죽은채로 며칠간 방치되어 있었다고...
전 갑자기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 이 냄새는...?
그 할머니...
그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 할머니를 만났을 때 장 봐온 것 중 작은 복숭아라도 하나 꺼내서 드릴걸...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셔서 그렇게 될때까지 방치되었던게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무섭다는 생각이요.
어떻게 자기 이웃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무관심할수 있는 걸까요?
어쩌면 이렇게 철저히 개인주의가 될 수 있는지,
철저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가진 사람들을 보고 "쟤는 아마 옆집에서 누가 죽어도 모를거야"라고들 얘기하죠?
그게 바로, 현실로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직까지도 건물안에 냄새는 잔뜩 배어 있습니다. 경찰이 크레졸을 잔뜩 뿌리고 갔는데도 여전하네요..
다행히 집안에는 냄새가 안 들어오지만 복도를 왔다갔다 할 때마다 피할 수 없는 냄새입니다. 얼마간은 감수해야겠죠...
그런데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할머니가... 아무도 자기의 존재를 몰라주었으니 죽어서라도 사람들에게 자신에 여기에 살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하는구나..하구요.
저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었는데...
1분도 안되는 짧은 대화 나눈게 전부인데...
한평생을 살다 가는데...
그 최후를 맞는 순간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중요한건데...
그렇게 끝난 그 할머니의 죽음이 이렇게 마음에 박혀 있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유학 중 내 몸 하나 제대로 관리하며 살기도 힘들지만 좀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사람들에게 인색하지 않게 베풀며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만 듭니다...
나한테 말 좀 걸면 어때서, 내가 안 신는 운동화 한켤레라도 갖다 드렸다면 지난 겨울은 덜 추웠을 걸, 한국말 잘하시네요 하며 과일이라도 하나 쑥 꺼내 드렸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그분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네요...
Comment '8'
  • ?
    artcon 2008.09.01 20:40
    에휴... 글을 읽고 가슴이 답답해 오는군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바둥거리는지...(저 자신에게 던진 말입니다. 오해 마시길...)
  • ?
    룰루랄라 2008.09.01 20:57
    제목만 보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는데...
    프랑스에서 이런 일이 너무 흔해져 버려서 때론 무감각해지기도 합니다.
    글쓰신 분의 마음을 통해서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멀리 이 타국에 나와서 살지만 따뜻한 한국인의 정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윗분 말대로 짧은 세상, 뭐들 그리 못잡아 먹어서 안달아고 아둥바둥 살아가는지... 정말... 이 글 읽으며 반성 많이 했습니다.
    오랫만에 훈훈한 글, 공감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lalala 2008.09.01 21:10
    문득 2003년 canicule에 많은 프랑스 노인들이 가족과 이웃들의 무관심속에서 사망한 일이 생각나네요
    프랑스에서 살면서 점점 메말라 가는 저를 발견하곤 하는데..
    글쓰신 분 마음 이해할 것 같아요
    내 작은 미소와 따뜻한 손길 하나가 누군가에겐 커다란 힘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
    봄날의곰 2008.09.01 21:53
    파리에서는 서울보다 유난히 구급차 싸이렌 소리가 자주 들리길래, 처음엔 '테러인가?'하다가 나중엔 '사회복지시스템이 잘 되있어서 그런가?' 하다가.. 요즈음엔 '혼자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하고 있습니다.
    .
    정책이나 제도로만 해결되지 않는 사람 살이의 많은 구석구석들, 그리고 삶의 자세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
    힘내고, 살아있는 사람이 감당할 몫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야 겠습니다. 글 쓰신 분도 힘 내셔요~ ^^
  • ?
    zahara 2008.09.01 22:13
    그렇죠, 이미 떠나버렸는데 조금이나마 잘 대해주지 못한게 후회스럽고 두고두고 가슴 깊이 박혀서 언젠가 우리도 떠나야 하지만, 정작, 떠나는 날까지 종종 생각이 나서 애틋 하겠지요.

    우린, 후회하지 않도록 언제 어디서나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진실해야 할겁니다.

    그 이별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해봐도 소용없이 그영원 하니까요.

    죽기전 잘 살아있었지만 , 죽은 후 모든것은 끝 이죠. 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 도저히 짐작을 할수가 없잖습니까...

    소중한 순간들은 뭔 가 에 이끌려 빨리도 달아나고 있는데,
    잠시후 도 기약 할수없고 ,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니,이세상 모든것, 모든 순간이 가슴시리도록 소중하다는 걸 안다면, 우리는 매사 함부로 아무렇게나 임 할수가 없을겁니다.

    이세상 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겁니다.

    그리고, 서로 아웅다웅 할 겨를도 없겠지요.

    noursette님 고인이 되신 노부인을 통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을 하셨군요.

    사는날까지 웬만하면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으로 우리모두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며 삽시다.

  • ?
    안개비 2008.09.02 09:26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주변의 힘든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보는 용기는 필요할 것이란 생각을 하며 저자신부터 실천하겠노라 다짐해봅니다.
  • ?
    포트폴리오 2008.09.05 12:48
    아.. 글 읽으면서 살짝 울었어요. 외로이 죽어가신 할머니의 인생을 애도하며. 그리고 원글님의 당연하지만 따뜻한 그 마음씨가 고마워서.
    살아있는동안 우리는 많이 베풀면서 살아야겠습니다.
  • ?
    noursette 2008.09.05 21:24
    조언 남겨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신 따뜻한 글 읽으면서 참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어요... ^^ 모두들 외지에서 때로는 견디어내기 힘든 유학생활, 타지생활하고 계실텐데 항상 열심히 살고 한국인의 정을 잊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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