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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유학
2009.02.19 04:32

음악 바이러스와 음악인의 삶



비까지 내려 우중충한 겨울 오후, 카잘스가 직접 편곡해 연주한 스페인 민요 주제곡, 바흐의 토카타 중 아다지오, 엘가의 사랑의 연가를 듣고 있다. 저 세상의 고요 안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 현실과 전혀 무관한 공간으로 하염없이 빠져드는 기분이다. 음악은 왜 하는 것일까? 왜 음악의 바이러스에 걸리면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것일까?

태어나면서부터 클래식만 들으며 자란 음악인들이 있다. 이를테면 부모님의 연주를 듣고, 레슨하는 모습을 보며, 음악학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등 환경 자체가 음악으로 둘러 쌓여 있는 것이다. 지휘자 바렌보임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그는 5살 때 처음으로 다른 친구들 집에는 피아노가 없고 이들의 삶이라는 것이 음악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뱃속에서부터 아버지의 피아노 소리를 들었고, 자라면서는 줄곧 부친의 피아노 레슨을 접했으니 그로서는 ‘음악이 없는’ 보통 삶을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두 세계의 간극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할 정도니 이만하면 음악에만 몰입하여 연주생활만 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떨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바렌보임의 경우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음악인들의 느끼는 내면과 현실 세상 간의 격차는 나열하기가 힘들 만큼, 말도 못하게 많다.
 
어떤 사람들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때, 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교향곡을 처음 듣고, 클래식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동서고금할 것 없이 많이 듣는 얘기이다. 간혹 성숙한 분들 중에는 어려서 참혹한 세상을 경험하고 난 후,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영원히 피신하고자 음악을 듣게 되었다고도 한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든, 취미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음악을 듣고, 좋아하다는 것은 분명히 심리적인 욕구가 있는 셈이다.  
음악의 신비에 빠지는 순간은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보통은 누군가 ‘연습을 해라, 해라’ 해서 하는 게 전부지만, 연주가로 장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스스로 그 세계에 빠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학교 갔다 와서도 음악, 밥 먹고 또 음악, 무슨 힘에 이끌리듯 스스로 음악을 연습하고 몰두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친구들과 노는 것도 시시하고, 세상살이엔 관심도 없게 되고, 오직 내 음악의 완벽을 위해서 반복 연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끝없는 연습에 들어간다. 이럴 때 옆에서 좋은 지도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이가 필요하다. 바로 거기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역할이 있다.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큰 무대에 서보는 것도 좋다. 일찌감치 큰 무대를 경험하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자신의 연주를 맞춰본 아이들은 음악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을 갖추게 된다. 부수적으로는 무대를 장악하는 매너라든지, 담대함,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데 필요한 강한 에너지와 동기를 부여받게 된다.
다만 음악 하나에만 몰입한 나머지, 주변의 삶과 차단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음악을 전공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나이에 맞는 독서를 해야 하고, 관심 있는 정보가 있다면 그것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지녀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를 위해 부모의 각별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연주가들의 부모님 중에는 특별했던 자녀 교육으로 자주 회자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일화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으며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50세 때, 세계 정상의 무대에서 스스로 은퇴를 선언한 프랑스와 르네 뒤샤블르라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는 1년에 200회에서 300회 정도의 연주를 소화해냈는데, 늘 강조하는 말이 피아노 테크닉을 12세 전까지 다져놓지 않으면 아예 그 길에 들어서지 말라는 충고였다. 조금 심한 말 같지만, 그만큼 음악의 길이 험난하다는 경고의 뜻일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 세대라면 손등을 맞아 가면서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피아노 뚜껑 위에 엎드려 잠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은 피아노 때문에 엉덩이가 커졌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해봤을 것이다. 유독 연습량이 많은 악기이다 보니 피아노 의자 위에 붙박여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악기도 처지는 비슷하다. 바이올린 전공자는 하나같이 턱에 멍 같은 훈장을 달게 마련이고, 첼로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왼손 손가락에 말굽 같은 굳은 살이 배겨져 있다. 그뿐인가. 내가 잘 아는 분은 바이올린을 하는 아들을 눈 쌓인 추운 겨울날, 반바지만 입혀 내보내기도 했다. 정신력을 훈련한다는 명목에서였는데 완전 군대, 혹은 운동선수를 훈련시키는 방법이나 다름 없었다. 
 
어떤 유명한 피아노 교수님의 일화도 있다. 그 분은 제자들에게 연주나 콩쿨을 앞두고 새벽 3시에 깨워 연주를 시켜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어야 어느 무대에서든 혼신을 다한 연주가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음악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있는, 재능있는 제자들에겐 더 혹독했다. 갑자기 한 번도 다뤄 보지 못했던 작곡가의 악보를 일주일만에 쳐 오라고 한다든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다른 학생들 앞에서 악보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참혹한 수모를 주고야 만다.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해도 차마 울지 못하고, 창피한 걸 꾹꾹 눌러 참아야 한다. 그런 것조차 이겨낼 수 있는 오기가 음악가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몇 천 명의 청중 앞에서도 도도하게 걸어나가 연주하는, 강철 같은 연주자가 된다는 것이 그 교수님의 지론이었다.


음악을 위해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포기하다시피 한 연주자들을 기운 빠지게 만드는 사례도 물론 있기는 하다.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피아니스트의 여제, 마르타 아르게리히가 그렇다. 그녀는 자신에게는 혹독하다할 만한 연습 과정이 없었다는 듯 말한다. 자신은 음악 기숙사에서 하루종일 잠만 자고, 밤에도 노는데, 하루는 옆방 친구가 열심히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3번을 연습하더란다.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가 그 곡을 다 외워 치게 되었다는 일화이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듯 마르타는 꾸준한 연습보다는 무서운 집중력, 암보력이 천재적이었던 셈이다.
아르튀르 루빈스타인도 연주하러 가는 길, 기차 안에서 그날 칠 협주곡 악보를 외웠다는 말이 전해진다. 정상급, 혹은 천재들이란 이렇듯 어딘가 남다른 능력을 타고나는 것일까?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연주자들의 예는 우리에게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집중력을 가지게 된 것도 훈련의 결실이다. 이미 어떤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어느 정도는 어릴 때 혹독하게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미리 기본 테크닉을 습득해놓지 않으면 시간적으로 그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해내면서 일상생활을 병행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음악적인 감수성을 타고난 경우라면 축복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기계적인 음악인이 되어 나중에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하거나 진로를 바꿔야 하는 사태까지 생길 수 있다.   
기본적인 연주 테크닉을 훈련하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 뿐인가. 각 시대별, 각 작곡가들의 언어(화성, 기법 등등)를 이해하고 창작된 작곡가의 의도한 바를 잘 표현하는 것이 연주가들의 의무이자, 소망이다. 현대에는 무대라는 순간의 예술 속에서 청중들과 어떻게 호흡하며, 무엇을 전하느냐도 매우 중요해졌다. 이 모든 것이 원활하지 않으면 음악하는 사람 혼자 연습하고, 혼자 만족하면서 청중과 괴리된 음악을 하기가 쉽다.    
연주는 악보의 재연인 동시에, 재창작이기도 하다. 기질적으로 예술가 근성이 있어야 청중을 만지고, 주무르고,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지나치게 학위 위주이고, 콩쿨 성적이 연주력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결과, 공장에서 길러낸 콩나물들처럼 개성 없는 음악들이 너무나 많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음악회장에 가지 않고, 음반과 컴퓨터로 집에서 편하게 음악을 듣는 편이 나을 것이다. 좋은 음반의 척도라는 것이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깨끗한 연주라면 말이다. 기계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풍토에서, 자기 고유의 색과 개성을 갖고 있는 연주가가 점점 줄어가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높이 살 일이다. 하지만 그것에만 집착해 버리면 결국 도달하는 것은 예술의 죽음이다. 생명이 있는 연주, 살아 숨쉬는 연주, 청중에게 기쁨을 주고, 슬픔을 주는 연주, 위로가 되는 연주, 이를테면 삶을 선사하는 연주가 음악가의 목표가 된다면 더 좋겠다.
 피아니스트이자 세계 유수의 콩쿨 심사위원인 마르타 아르게리히에게는 이런 원칙이 있다고 한다. 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더라도 ‘살아 숨쉬는’ 연주를 들려주는 연주인한테는 더 많은 점수를 주는 것인데, 늘 그녀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콩쿨 점수의 기준을 문제 삼아 점수를 깎으려는 심사위원이 있게 마련인데, 그럴 때면 그녀는 가차 없이 그 자리를 뜬다고.. 그리고 콩쿨 결과와 상관없이 자기의 영혼을 움직인 음악가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피아노계의 대모’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아직도 살아있는 연주를 들을 줄 아는 귀들이 있다는데 안도의 숨을 쉰다.

귀도 훈련되는 것이다. 우리의 감수성이 풍부해진다면 그것은 경험 속에서 다채로운 감정들을 받아들이게 된 결과이다. 우리의 듣는 귀도 마찬가지로 인생의 깊이를 더 할수록 들리는 게 더 많아지고, 격이 높아진다.
좋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면 단지 자기를 내보이고, 표현하기 위한 연주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피하고 싶은 외부의 자극조차도 담대하게 마주하여 결국엔 내 감성으로 녹여낼 줄 아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예술은 나만의 예술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감동하고 살아있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아닐까?
 
【견윤성 갸브리엘 (Féstival Appassionata음악 감독)】
   http://appassionata.dot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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