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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단에게 박수를...

by 김영진 posted Jul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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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말이지만 축제는 끝났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이겼다.
이탈리아 승리보다 지단의 퇴장에 더 여운이 남는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장엄하게 퇴장하는 그의 뒷모습에 감동의 박수를 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역대 어느 월드컵 때보다 출중한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이상하게도 초라하게 물러난 패자들에 더 정이 가는 게 올해 월드컵이었다.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코트디부아르, 16강에서 떨어진 만년 우승 후보 네덜란드, 8강에서 독일에 패한 아르헨티나,
역시 8강에서 포르투갈에 진 잉글랜드, 스위스에 분패한 태극전사들에 아쉬움과 동정이 간다.

올해 월드컵은 여느 때보다 몸을 사리는 수비축구가 대세를 잡은 대회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다른 팀에 비해 최소의 실점만 기록하고 결승에 올랐다.
진영을 잔뜩 웅크리고 골을 넣기보다는 골을 먹지 않기 위해 우선 주력하는 수비축구를 펼치는 팀에
상대팀이 기진해 나가떨어지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올해 월드컵은 우리에게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대회가 된 셈이다.
또 바로 그런 이유에서 소심한 축구전술 벽을 뚫고 나와 공세적으로 운동장을 누볐던 스타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잔상에 남는다.
그 중에서도 신들린 듯한 몸놀림으로 나이가 주는 체력적 한계를 부정했던 지단은 올해 월드컵에서 가장 돋보이는 스타였다.

이탈리아는 이기기 위한 축구를 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비축구를 했지만 지단과 앙리가 있음으로 진취적인 축구 기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월드컵 축구사에서 공격적인 선수가 스타로 떠오르지 않은 올해 대회는 드문 예가 될 것이다.

지단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은 슬픈 일이다.
지단이 쓸쓸하게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월드컵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의 행위가 가식 없는 순수한 스포츠맨의 뒷모습으로 보였다.
지더라도 책략을 부릴 줄 모르는 고수의 모습으로 그는 퇴장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것도 스포츠의 매력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단의 퇴장은 어느 대회때보다도 소심했던 올해 월드컵의 피날레로 또한 적절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