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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얘기
2006.01.14 14:29

콩비지와 어처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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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때 내가 즐겨 먹던 음식 중 한가지가 어머님께서 정성스레 만드신 콩비지찌개이다.

콩비지로 만든 음식이 식탁에 올라가기까지 어머님의 그 공은 정말 이루다 말 할 수 없다.
먼저 깨끗하게 다듬어놓은 노오란 콩을 큰 그릇에 담아 물에 불군다. 그렇게 하루 저녁 혹은 하루 낮 물에 담 구어 놓은 콩은 원래 콩보다 2, 3배는 더 커진다.

다음은 물에 불거진 콩을 맷돌로 갈아야 하는데 맷돌을 큰 함지에 넣고 어머님은 한 손으로는 맷돌의 손잡이를 쥐고 맷돌을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숟가락으로 맷돌 위에 생긴 작은 구멍 안으로 콩을 자주 떠서 넣는다. 그러면 스르륵스르륵하는 맷돌과 맷돌의 마찰소리와 함께 맷돌사이에 끼인 콩들이 깨지고 부서지고 하여 맷돌과 맷돌 틈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어머님께서 우리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만드는 음식중 하나인 콩비지이다.

콩비지로는 대체로 찌개를 만드는데 거기에 배추 시래기나 김치 같은 것들을 넣어 보글보글 끓이는데 큰 가마솥에서 새어나오는 그 향기는 우리 식구들의 식욕을 돋구어주는 촉매제로 작용하군 했다.

콩에는 풍부한 영양소들이 함유되어 있는데 콩비지는 예로부터 몸을 튼튼히 하는 식품으로서 가족의 건강을 그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가정주부들의 손에 의해 우리민족 가정식탁에 자주 오른다.

콩비지를 자주 먹으면 당뇨병, 고혈압, 간장질환, 흰머리, 갱년기 장애, 변비, 다공증多恐症 등의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의 독특한 음식인 콩비지찌개를 발명한 우리의 어머님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또한 그 얼마나 행운인가.

어머님께서 콩비지를 만들 때 나는 힘들게 맷돌을 돌리는 어머님을 도와 때론 맷돌 위의 작은 구멍에 콩을 떠 넣기도 하고 때론 혼자서 맷돌의 손잡이를 잡고 맷돌을 돌리기도 하는데 가끔 맷돌을 왼쪽방향으로 돌려야 하는지 오른쪽방향으로 돌려야 하는지 우왕좌왕 할 때도 있고 어린 나이라 한 손으로는 힘이 모자라 두 손으로 돌리기도 했다. 때론 어머님과 함께 맷돌을 돌리는데 힘을 어머님과 반대 방향으로 잘 못 사용하여 어머님을 도와주지 못하고 도리어 더 힘들게 만들 때도 있었다.

콩비지를 만드는 맷돌은 참 간단하게 생겼다. 맷돌 두 쪽과 손잡이 하나, 이 것이 전부다. 헌데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단단한 나무로 된 그 손잡이가 없으면 맷돌을 돌릴 수 없고 따라서 콩비지를 만들 수 없다. 그냥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손잡이 이름이 바로 어처구니란다. 다시 말하면 어처구니가 없으면 콩비지를 만들 수도 따라서 건강음식 콩비지찌개를 해먹을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과 함께 했던 맷돌이 지금은 동년의 추억과 함께 고물이 되어 일상에서 잊어버려졌지만 "어처구니"란 말은 오늘의 현대사회에서도 자주 쓰는 언어가 되고 있는데 프랑스 빠리에서 더욱이 한인사이에서도 자주 이런 "어처구니"란 말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어처구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맷돌이 없으면 어처구니가 있을 수 없고 또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헌데 맷돌이 이미 고물이 된 오늘날에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어처구니가 없다고 타발하고 있을 가.

그렇다면 분명 맷돌이 존재하고 있을 텐데...

사람 대 사람, 인간 대 인간. 이것이 맷돌이 아닐 가 싶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 오가는 인정, 즉 마음이라는 것이 어처구니가 아닐 가 싶다.

콩비지의 주재료인 콩은 무엇일 가?
우리 사이를 잇는 사회 전반의 정치, 경제, 문화, 생활 등등이 아닐 가 싶다.
이것들이 바로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서로 주고받고, 갈고 또 갈고 하여 화애롭고 서로 수용할 수 있는 콩비지가 되는 것이 아닐 가.

황당한 일이나, 도덕적이나 상식적인 것들을 벗어난 일이나, 타인에게 당혹함을 주거나 피해를 주었을 때 우리는 자주 "어처구니가없다"고 표현한다.

행동은 마음에서 온다고 한다. 결국 "어처구니"란 양심적이란 것이고 도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빠리에서 살며 가끔 "어처구니없다"는 말로 한인사회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본다.
또한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되었고 그 당사자들에 대해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빠리 오페라 부근에 있는 한 한인슈퍼에서 콩비지를 가져다 동년의 추억을 되살리며 콩비지찌개를 만들어 먹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나에게도 어처구니가 있어?"

그 동안 나 때문에 어처구니없어 했던 분들이 계신다면 참으로 죄송하다.

병술년 새 해는 내 안의 어처구니를 살찌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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