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팡세

‘지음’의 명과 암

posted Oct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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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면서 ‘짓는다’는 행위만큼 더 다양하고 의미심장한 것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짓는다는 행위는 없던 것을 창안해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천지창조가 그러하듯, 인류 또한 누군가에 의해 ‘지음 바’ 되어 그들의 삶과 역사를 기록해왔다. 

‘짓는다’는 행위는 곧 ‘지음 조造, 작作’을 뜻하며 지음을 통해 모든 사물은 현상세계에 존재하게 된다. 우리말의 ‘짓는다’는 뜻으로 한자에서 온 ‘지을 작 乍’자를 쓰는데 이는 칼붙이로 나무 따위를 패어 V자 모양의 자국을 내거나 옷깃의 모습을 그린 그림글자이다. 이런 모습에서 ‘나무로 어떤 모양을 만들다’ 혹은 ‘옷을 만들다’는 뜻이 생겼고 나중에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람 인亻자가 추가되어 ‘지을 작作’ 자가 되어 오늘날까지 쓰고 있다.

집을 짓거나 시와 소설과 문장을 짓고 노래를 지으며, 밥을 짓기도 하고 약을 지으며 농사를 짓고 옷을 짓고 이름을 짓는다. 그런가 하면 무리를 짓고 줄을 지어 떼를 지어 다닌다. 웃음을 짓기도 하고 손짓발짓을 하며 고갯짓과 눈짓 콧짓 입짓으로 소통을 하며 눈물을 짓고 한숨을 지으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표정을 짓는다.

실과 끈의 매듭을 지으며 결박을 짓는다. 해 온 일을 마무리 짓고 이야기를 일단락 지으며 결론을 짓는다. 관계를 짓기도 하고 짝을 지으며 이것저것 구분 짓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말을 짓고 이야기를 지으며 거짓을 꾸며 짓는다. 

이렇듯 유기체든 무기체든 지음을 받는 순간 그 존재는 독자적인 주체로서 현상계에 태어나게 된다.
 ‘지음’을 받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로봇은 그것을 설계하고 제조한 사람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 설계자의 의도와 컨셉에 부합된 일만 하다가 고장이 나게 되면 폐기처분 된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짓는 행위’는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의 짓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짓’이 많이 있다. 지음은 ‘짓’으로 다시 ‘짓거리’로 ‘짓’의 속된 표현이 된다. 가령, ‘저 사람 하는 짓거리 좀 보게.’라고 할 때는 ‘짓’이라는 말보다 더 좋지 않은 행동임을 나타낸다는 느낌이다. ‘짓거리하다’는 ‘짓하다’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별것 아닌 또는 하찮은 ‘까짓’, 쓸데없이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하는 허튼짓, 개짓, 망나니짓, 개망나니짓, 활개짓, 규모가 작고 시야가 좁으며 안목이 짧은 고린짓, 겨우 요만한 정도의 요까짓, 손을 펴서 함부로 휘젓는 손사랫짓, 악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의 못된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악귀짓, 우스갯짓, 여우짓, 어릿광대짓, 이 모두는 짓는 행위가 좋지 않은 모습을 말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지음의 행위에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명과 암의 양면성이 있다. 대부분의 창작創作이나 작품作品들은 인간의 삶에 이롭고 도움을 주어 문화를 형성해가는 것들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 인간의 삶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그것으로 인하여 사회적인 불신과 불화, 반목을 촉발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창조創’造’와 작업’作’業의 한 낱말씩 조합한 말이 조작造作 이란 것이다. 조작은 창조도 작업도 작품도 아니다. 조작은 어떤 일을 꾸며내는 일로 주작(做作)이라고도 한다. 위조, 변조, 연구 부정행위, 여론조작, 승부조작, 서류조작 이러한 것들이 바로 조작이란 것이다. 

인류 역사 속에 조작된 역사의 기록은 무수히 많다. 거짓이나 없는 것을 사실인 것처럼 지어내는 것이 ‘꾸미는’ 것이며 조작 행위이다. 어떤 물건을 속일 목적으로 진짜인 것처럼 꾸며서 만드는 위조僞造 행위는 사회, 국가적으로 큰 문제로 야기되고 유전자 조작, 여론 조작, 이미지 조작, 역사 왜곡 조작, 심지어 기후 조작까지 있었다. 

과거엔 역사를 왜곡하는 게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사진이 나오고부터 양상은 달라졌다. 글이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전달하는 이미지가 훨씬 강렬했다. 그때부터 사진은 선전도구로 활용되었고 목적에 맞게 조작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사진 조작은 위험한 작업이다. 원본이 유출되면 모든 조작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조작행위 중에 사진의 조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사진은 항상 현실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조작 사진 중에 <레니 리펜슈탈과 히틀러>란 역사적인 사진 속에는 독일 여류감독이던 레니 리펜슈탈 옆에 있던 히틀러의 최 측근 파울 괴벨스를 지워 발표했던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조작 짓은 모두가 죄를 짓는 행위이다. 더욱이 서류나 증명서를 조작한다는 것은 범법 행위인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짓는 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가장 가치 있는 지음은 ‘복 짓는’일일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웃과 남을 위해 행하는 아름다운 지음의 행동은 사회를 더욱 살 만한 사회로 만들어 간다. 한 개인이든 국가든 조작하는 행위는 금물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였던 이지 스톤(I. F. Stone 1907~1989)은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런 나라에는 곧 재앙이 닥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거짓과 조작을 쉽게 하는 개인이나 국가는 미래가 없음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정택영 / 파리 거주 화가/ 파리팡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