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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서양 연안지대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주둔했던 벙커들의 잔재를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콘크리트 물체들이 해안지대 덤불 속에 시커먼 괴물처럼 은닉되어 있거나 혹은 썰물 시 바닷물 위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들 벙커들이 어찌나 견고한지 폭파시켜 말끔히 걷어내는 공사가 쉽지 않아 그대로 방치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과거의 잔재물 중에 이색적으로 관광명소로 부각되는 곳이 있다. 플루공블랭(Plougonvelin) 마을의 ‘39-45 역사박물관’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군 사령탑의 요새였던 거대한 벙커이다. 프랑스 서쪽의 맨 끝 도시 브레스트에서 대서양을 향해 서쪽으로 더 20Km 정도 뻗어나간 생-마티유 벼랑에서 가까운 지점이다. 
벙커 내부는 미로를 형성하듯 지하 2층을 포함하여 5층에 걸쳐 각종 전시관들이 마련되어 있다. 벙커의 콘크리트 벽 두께는 무려 3.5m에 이른다.
 
프랑스 전역에는 이렇듯 2차 세계대전의 현장을 각인시키는 ‘39-45 역사박물관’이나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발자취를 기리는 크고 작은 기념관들이 시골마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플루공블랭의 역사박물관은 벙커 내부에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나 시청 혹은 굴지의 재단 소유주가 아닌 두 젊은 형제가 운영하는 역사 사업이라는데 독특성을 지닌다.
 
오렐리엥(34세)과 클레망(27세) 꼬낄(Coquil) 형제가 경영한다는 벙커 박물관의 탐방취재를 위해 개장 여부를 확인하고 약속을 정한 뒤 플루공블랭 마을로 향했다. 
 
 
▶ 미래지향적 역사 사업
 
플루공블랭의 역사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평일 오전인데다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인지 황량할 정도로 널따란 주차장에는 한 대의 관광객 자동차만이 눈에 띄었다. 매표구를 혼자 지키고 있던 동생 클레망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5월 27일 토요일부터 개관하여 아직 수입은 없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작년에는 약 35,000명이 방문했다고 덧붙였다.
 
벙커 박물관은 두 형제가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프로젝트이다. 이 꿈이 현실화된 것은 지난 2015년. 주민 4천여 명의 플루공블랭 시청이 두 젊은이의 오랜 숙원이던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벙커에 대한 25년 장기임대계약을 체결했다. 행정상으로 벙커와 주변 벌판은 플루공블랭 마을 소속이다.
이어서 2017년 6월 ‘39-45 역사박물관’이 정식 출범한다. 주변에서 많은 도움이 뒤따랐던 것은 물론이다. 여기저기서 앞 다투어 주민들이 경험담이나 목격담을 들려주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증거물들, 골동품처럼 보관하던 병기, 서류, 삽화, 사진, 군복들을 기증했다. 
 
역사박물관은 전시품들에 붉은색과 노란색 동그라미로 표시하여, 역사적 고증에서 철저하게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붉은 동그라미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고증하는 증거물이다. 노랑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직접 목격한 프랑스인들의 증언으로서, 그들의 입장에서 해석한 역사의 재조명이라는 의미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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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군의 벙커 사령탑
 
플루공블랭의 ‘39-45 역사박물관’은 25명 독일군 병사와 기술요원들이 주둔했던 벙커이자, 포병대를 총지휘했던 사령탑이다. 역사박물관을 둘러싸는 대지는 22헥타르에 이른다. 독일군 사령탑 벙커 이외에 터널로 이어지는 또 다른 2개의 벙커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브레스트는 독일군에게 군사 전략상 중요한 항구였다. 군수품을 비롯한 각종 물자와 기술 장비를 보급 받고, 장갑차들을 배치시키기 위한 군사적 요지였다. 바로 생-마티유 벼랑은 일대 해안지대를 통제하기에 적합한 요새 지대였으며, 특히 연합군 함대가 브레스트 항구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독일군 포병대를 주둔시켰다. 이를 위해 플루공블랭 마을에 1940년 7월 벙커를 건축하고 대포들을 배치했다.
플루공블랭 역사박물관은 벙커에 주둔했던 25명 독일군들의 일상을 마네킹으로 재현해놓았다. 세면기 앞에서 면도하는 병사, 텔렉스를 교신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지하에는 공동침실, 샤워실, 기술정비실, 대포발사지점을 측정하는 기계실, 벙커의 공기를 전환시키는 환풍기 실 등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벙커 거주자들이 사용했던 각종 물품들은 물론 군복과 의복, 장비와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연합군들의 군복, 낙하산부대,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복장과 각종 장비들도 전시한다. 
사령탑 가장 높은 방에는 대포를 쏘아 올리기 위한 거리측정기, 각도계, 시차 굴절률계 등이 설치되어 있다. 벙커의 옥상에는 대서양 쪽 하늘을 겨냥한 고사포가 놓여있다. 이곳에서 일대 해안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생-마티유 벼랑에 우뚝 솟아있는 하양과 붉은 색이 조합된 등대가 육안으로도 바라보인다. 
옥상을 통해 벙커의 바깥 광장으로 나오면 영화에서만 보았던 탱크와 각종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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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 생-마티유 
 
플루공블랭 벙커는 관광명소 생-마티유에서 1k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라는 지리적 이점을 지닌다. 생-마티유에는 폐허가 된 11세기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다. 로마시대의 정문과 남아있는 일부 건물은 관광명소로서 한 치의 모자람이 없는 자태를 자랑한다. 프랑스대혁명 때까지 이곳의 수도승들은 일대의 해안지대를 감시하고, 수도원의 가장 높은 탑에 등불을 지펴서 선박들에게 길을 인도하는 등대지기 역할을 담당했다. 
 
수도원 뒤편으로 등대가 세워진 것은 1835년. 하얀 몸통에 빨간 모자를 쓴 듯한 등대는 높이 37m, 수면에서의 높이는 58m에 이른다. 등대 꼭대기에 ‘생-마티유’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에는 원거리 조정이 가능한 최첨단 리모컨으로 등대에 불을 밝히고 있다.
 
해마다 생-마티유를 찾는 방문객은 20만 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39-45 역사박물관’은 새로운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두 젊은 형제가 방치된 벙커를 이용하여 역사 사업을 구상하면서 계산에 넣었던 이점이 아닌가 싶다. 
동시에 생-마티유 벼랑이 발산하는 특유의 정서와 더불어 벙커 박물관을 통해 시공과 이념을 초월한 역사의 현장을 새롭게 실감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잔재물을 박물관으로 박제시킴으로서 생-마티유 연안을 감시하던 독일군 사령탑의 미스터리를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렇듯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사업에 뛰어든 20대 클레망은 프랑스인이든, 독일인이든, 모든 방문객들이 벙커를 견학한 뒤 만족감을 표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플루공블랭 ‘39-45 역사박물관’은 1차 세계대전 종전날인 11월 11일까지 휴관 없이 매일 10시부터 18시 30분까지 개관한다.  
 
☞ https://museememoires39-45.fr
 
 
【프랑스(파리)=한위클리】이병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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