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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그랑팔레에서 툴루즈-로트렉(Toulouse-Lautrec, 1864-1901년) 회고전이 2019년 10월 9일부터 2020년 1월 27일까지 열린다. 유화, 수채화, 광고포스터, 데생과 판화 등 225점이 집결된 대규모 회고전으로 ‘모더니즘’이라는 시각에서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재조명된다. 1992년 ‘몽마르트르 문화’라는 테마로 개최된 이후 27년 만에 열리는 전시회이다. 


▶ ‘작은 거인’툴루즈-로트렉

툴루즈-로트렉은 대도시 툴루즈에서 가까운 랑그독 지방 알비(Albi) 태생으로 두 고장의 이름이 합성된 독특한 성씨를 지닌다. 참고로 로트렉은 마늘 생산지로 유명한 고장이다. 아티스트로서 다른 특수성을 찾는다면 신장이 1.50m의 단신이라는 점이다. 14세 때 사고로 다리골절상을 입고 불구가 되어 성장이 멈춰버린 불운의 사나이다. 신체적 콤플렉스를 예술을 통해 당당하게 극복한 ‘작은 거인’으로도 비유된다. 

그는 알콜 중독과 성병으로 37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광고 포스터를 포함한 석판화 369점과 수많은 데생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반 고흐와 같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암스테르담에서 특별히 조달된 그의 ‘반 고흐 초상(1887년)’은 눈길을 끄는 작품들 중에 하나이다. 

툴루즈-로트렉은 1890년대 유흥문화의 중심지였던 카바레에 깊은 애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당대 첨단 예술로 등장한 사진술과 영화, 최첨단기술 자동차 분야에도 깊이 심취했다. 이런 열정이 그의 미술기법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것은 물론이다.

또한 승마, 사이클링 등 속도감 나는 스포츠에도 깊은 열정을 지녀, 당대 스타급 자전거 선수와 카레이서의 모습을 화폭에 즐겨 담아냈다. 가령 1898년 작 ‘카레이서’의 경우 영화의 한 컷을 연상케 하는 화폭이다. 

이렇듯 카바레무희들의 춤동작, 서커스, 승마나 사이클링의 민첩한 움직임을 정통미술화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20세기 아티스트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선사했다.

▶ 퇴폐적인 여성취향 

툴루즈-로트렉의 삶과 예술세계에서 카바레 밤무대 무희와 화류계 여성들은 지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18세에 파리 몽마르트르에 정착하여 카바레, 카페, 극장들을 즐겨 찾았으며, 이 거리의 여성들과 더불어 자유분방한 삶을 즐겼다. 

19세기말엽 파리 몽마르트르는 세계미술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유흥적인 카바레문화를 주도했던 거리이다. 유흥과 쾌락의 거나한 몽마르트르 히로인들로는 물랭루즈의 유명한 무희 라굴뤼(본명 루이즈 베베르, 1866~1929년), 쟌느 아브릴(1868~1943년), 장차 여배우와 샹송가수로 유명세를 얻는 이베트 길베르(1865~1944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밤무대 댄서들은 툴루즈-로트렉에 의해 작품속에서 불멸의 여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나 다름없다.

툴루즈-로트렉은 몽마르트르의 여인들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리면서 알콜, 춤, 에로티즘이 뒤섞인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드가의 오페라극장 무희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음은 물론이다. 

밤무대 댄서들 혹은 화류계 여성들의 은밀한 모습과 생활을 엿보기를 즐겼던 아티스트였는데, 실지로 자신이 단골로 들락거리던 화류계를 화폭에 담아냈던지라 주변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여성들의 씻는 장면, 침실 등 은밀한 부분을 섬세한 데생솜씨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인간 툴루즈-로트렉의 진정성을 부각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여성 모델로서 붉은 머리의 카르멘 고뎅도 빼놓을 수 없다. 하얀 피부, 솔직함, 순수함, 동시에 비밀스러움을 담은 복합적인 카르멘 고뎅의 초상화 15점을 제작했다. 
그랑팔레는 붉은 머리 여성들을 담은 화폭들만으로 별도의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허리와 어깨 등의 곡선이 잘 드러나는 자태로 몸을 씻거나 몸단장하는 붉은 머리 여인들의 코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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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디이즘 취향

벗은 몸매를 살짝 드러내는 붉은 머리 여성들과는 대조적으로, 전시장에는 남성들의 코너도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웃음과 쾌락, 유흥이 넘치는 카바레의 손님인 듯한 남성들이다. 이들의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당대 패션을 구가하는 멋진 복장의 신사들이다. 
툴루즈-로트렉은 드가, 마네, 나비파 화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당시 예술계와 문학계는 멋과 우아함을 중요시 여기는 댄디이즘이 풍미하던 시대였다. 문인, 시인도 색채와 유행에 민감하여 양복, 넥타이, 장갑, 구두, 모자, 지팡이 등 멋진 장신구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며 멋을 주도했다. 툴루즈-로트렉의 화폭에서 이런 시대적 흐름이 잘 반영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트론 축제(La Foire du Trône)에서 춤을 추는 라굴뤼’를 홍보하기 위해 1895년 제작한 대형 광고판에서도 댄디이즘에 민감한 아티스트의 성향이 담겨있다. 그랑팔레 전시장에 나란히 내걸린 두 대형 목판유화(285 x 307cm)에서 오른쪽 작품 ‘무어 춤’의 관람객들 가운데는 댄디이즘과 동성애로 당시 파리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오스카 와일드도 끼여 있다. 챙이 긴 검정 모자와 하얀 정장차림의 등이 넓은 신사이다. 멋쟁이 작가의 곁에 앉은 프로필모습의 남성은 바로 툴루즈-로트렉 자신이다. 신체적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멋과 우아함을 추구하는 아티스트였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트론 축제’는 957년부터 개최되는 역사 깊은 전통놀이행사로 현재도 매년 파리에서 개최되고 있다. 툴루즈-로트렉의 두 대형 목판유화는 그랑팔레 전시장의 분위기를 고품격으로 한층 끌어올리는데 한몫을 담당한다. 

▶ 광고 포스터의 달인

툴루즈-로트렉은 카바레나 콘서트-카페의 광고 포스터 제작으로 당대 유명세를 얻었는데, 여기서 ‘물랭루즈의 화가’라는 별칭도 생겨났다. 그의 재능 앞에서 피카소가 찬사를 던졌을 정도이다. 젊은 피카소는 파리에 도착하여 툴루즈-로트렉의 작품을 즐겨 감상했으며, 술집 여인, 서커스 등의 테마에서 깊은 영향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광고 포스터는 유화 화폭들과 달리 담벼락 어디든지 대중들이 일상에서 쉽사리 접하는 길거리 시각예술이다. 사진과 영화가 첨단 예술영역으로 등장하던 시대에 걸맞게 툴루즈-로트렉은 비주얼 문화로 과감하게 대중들에게 접근했다. 1891년 제작한 물랭루즈의 광고데생도 그 유명한 실례이다. 무희 라굴뤼가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춤추는 모습, 이를 지켜보는 신사의 실루엣을 네 가지 색채로 담아냈다.

또한 붉은 목도리, 챙이 넓은 검은 모자, 풍성한 검은 외투차림의 샹송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1851~1925년)의 프로필을 그린 데생(1893년 작) 역시 누구나 알아볼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샹젤리제의 콘서트-카페 앙바사데르의 홍보용 포스터로, 여기에도 네 색채만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 광고포스터 3단계 제작과정이 그랑팔레 전시장의 한 벽면을 장식한다.

툴루즈-로트렉은 색채로 화폭을 꽉 채우지 않고, 일부를 빈 공간으로 남겨놓는 화법을 즐겼다. 이 빈 공간은 사회 금기로까지 치부되던 향락과 유흥에 빠져들던 본능적 성향과 대립되는 허무주의를 표출시킨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물론 19세기 말엽 독특한 화법으로 모더니즘을 담아냈던 툴루즈-로트렉을 어떤 각도로 바라볼 것인지는 21세기 관람객들 각자의 시각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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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파리)=한위클리】 이병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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