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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원 교사인 아내 마들렌느와 장녀 안-마리, 장남 피에르, 자녀 클로드를 안고 있는 이용제


■ 기획특집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일제 강점기, 프랑스의 한인 유학생들”


이용제, 통일된 한국을 꿈꾸며 평생을 무국적자로

함흥 출신의 이용제(李龍濟, 1896~1986)는 정석해와 같은 배를 타고 1920년 12월 14일 마르세이유에 도착했다. 1919년 압록강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던 그는 가족의 뜻에 따른 결혼을 피하기 위해 결혼식만 올리고는 바로 집을 떠났다. 3·1 운동이 일어날 당시 이용제는 총독부 산하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친구가 몰래 보내 준 독립 선언문을 며칠 동안 감추고 있다가 한 동료에게 넘겨주었는데, 이를 경찰이 발견하면서 동료가 감옥 신세를 지게 된다. 다행히 동료는 며칠 후에 감옥을 나오게 되었고, 그는 이용제에게 일제의 감시가 그에게도 집중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를 해 준다. 일본인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는 당시 명망이 있던 법학교에 등록하게 되는데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였던 조국을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자유롭기 위해 일본으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던 그에게 감옥살이를 했던 동료가 프랑스로 가자는 제안을 한다. 중국을 거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1920년 6월 11일 이용제는 동료 한수룡과 함께 일본인의 감시를 피해 서울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6월 20일 상하이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들이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이미 배가 떠난 상태라 이들은 상하이에서 4개월 이상을 기다린 후 드디어 11월 7일 프랑스 여객선 르 포르토스(Le Porthos)호에 오른다.

이 배에 탄 21명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모두 수중에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중 가장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이용제는 돈 한 푼 없이 파리에 남아 당장 일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 프랑스에 도착한 지 6일 만인 12월 20에 몽바르(Montbard)의 한 제철공장에 가서 2개월 동안 일하게 된다. 이후 스위프(Suippes), 랑(Laon), 렝스(Reims), 셍 드니(Saint-Denis)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1922년 여름에는 독일 뷔르츠부르그에 있는 친구 한수룡을 보러 떠난다. 당시 이 도시에는 한국 유학생이 30여 명 있었는데 이들의 도움으로 이용제도 학교에 적을 두게 된다. 그러나 친구의 도움으로 학업을 지속하기가 부담스러웠던 이용제는 결국 같은 해 겨울에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이용제는 독일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1922년 12월 22일부터 파리 16구의 한 사립병원에서 잡역부로 일하게 된다. 오전에만 일하고 숙식 제공에 한달 100프랑을 버는 괜찮은 벌이였다. 시간이 나는 오후에는 알리앙스 프랑세즈(Alliance Française)에 나가 불어를 배웠다. 이 병원에는 이용제를 포함하여 이호 등 한국인 2명이 같이 일하고 있었는데, 이용제가 나중에 김법린과 독일에서 돌아온 정석해에게도 일자리를 소개해 주면서 이곳에서 한국인 4명이 같이 일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업무를 처리해서 병원 측으로부터 큰 신뢰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뷔르츠부르크에서 공부하던 동료 한수룡은 1925년 독일의 마르크가 붕괴되자 더 이상 생활이 어렵게 되어 파리로 찾아왔다. 한수룡이 폐결핵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자 친구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용제는 6년 동안 다니던 편안한 병원 일을 그만두고 영화감독 마르셀 레르비에(Marcel L’Herbier)의 보조로 들어갔다. 매달 받는 월급 600프랑으로 친구의 병간호를 했는데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게 부담되었던 한수룡은 결국 1928년 12월 병든 몸을 끌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간 한수룡은 은혜를 갚기 위해 이용제의 이복형제들 학비를 졸업까지 대 주었다고 한다.

이용제는 1928년 장덕수와 김성수(동아일보 설립자)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파리 오페라를 구경시켜 주었다고 한다. 1932년에는 파리를 방문한 이승만을 만나기도 했다.
1935년 이용제는 파리 불문학 학사를 마치고 1942년까지 음성학, 언어학 등을 공부했다.
친구들이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속속 귀국했지만, 그는 홀로 파리에 남았다. 1936년 5월 7일 15세 연하인 마들렌느 쾨클랭(Madeleine Koechlin)과 결혼하고 프랑스에서 가정을 꾸렸다. 마들렌느는 유명한 작곡가 샤를르 쾨클랭(Charles Koeclin)의 차녀였고 이들 부부는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이용제는 따로 직업이 없어 유치원 교사였던 아내의 벌이로 가정생활을 꾸리고 본인은 집에서 자식들을 돌보며 살았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1950년 7월 20일 자 롭세르봐퇴르(L’Observateur)지에 「한국인에 의해서 본 한국 사태」란 글을 게재하기도 한다. 몸은 프랑스에 있지만 한시도 한국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았던 그는 당시 프랑스 언론에서 전하는 한국 전쟁의 실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읽으면서 무척이나 괴로워했다고 한다. 장녀 안느-마리(Anne-Marie)는 한국 전쟁 이후로 아버지의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기억한다.

휴전이 되고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자 그는 완전히 절망하게 된다. 고향인 함흥은 공산화가 되어버렸고, 친미주의자 이승만에 의해 남한 정부가 설립되니 그로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가 북한 정부를 인정한 것도 아니었다. 사회주의 사상에 가까웠지만 공산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돌아갈 조국이 없게 되었다. 그가 프랑스에 혼자 남아 고립된 생활을 하는 동안 프랑스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한국에 돌아가 정계, 학계에서 유명 인사들이 되었다.

1960년대 중반쯤, 파리에 거주하고 있던 일부 한국 젊은이들은 전쟁으로 분할된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 노력했는데 이용제도 이 일에 같이 참여한다. 이들 중 한 명과 함께 어느새 60세가 넘은 그는 어느 날 이제껏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를 통해 서베를린에 도착한 후 동베를린으로 떠났다. 거기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 북한의 실상을 전해 들은 그는 막연하게 동경했던 고향의 변질된 모습에 치를 떨고 다시 프랑스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이용제는 프랑스에서 평생을 살았어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지는 않았다.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광복 이후 1대 주프랑스 공사로 취임한 동료 공진항으로부터 남한 여권 발행을 권유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한국이 반쪽으로 갈라진 이상 어느 쪽 여권도 가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이 되는 날 한국 국적을 갖겠다던 그의 바람은 살아생전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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