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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미술사에서 ‘흑인모델(Le modèle noir)’을 재조명하는 이색 기획전이 7월 21일까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프랑스대혁명부터 2차 세계대전 전후까지 이어지는 흑인모델 변천사로, 프랑스에서 처음 다루는 테마이다. 미학적인 면을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사회, 정치, 인종문제까지 접근한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는 전시회이다.  
‘흑인모델’이라는 테마의 기조에는 흑인노예제도가 결부된다. 18세기 말엽까지만 해도 흑인 대부분은 노예 신분을 지녔다. 프랑스에서 식민지노예제도가 폐지된 것은 1794년.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1848년에 이르는 시기는 노예제도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이슈화됐던 시대이다. 


▶ 노예출신 모델, 마들렌

‘흑인모델’ 기획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화폭은 브느와(Benoist, 1768-1826년)의 ‘마들렌의 초상’이다. 1800년 살롱전에 출품된 작품으로, 식민지노예제도가 폐지된 지 6년이 흐른 시점이다.
모델 마들렌은 화가의 처남댁 하녀였다. 프랑스 해외령 과달루프 출생으로 노예 신분으로 주인을 따라 본토로 건너왔다. 
이 화폭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은 18세기 화폭들에 등장하는 흑인들의 전형적인 노예의 모습이 아닌,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당당한 자태의 여인을 담았기 때문이다. 

18세기 화폭에는 흑인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모델들에게 각자 이름을 붙이지 않고 미천함을 강조하는 ‘남자 검둥이(네그르)’, ‘여자 검둥이(네그레스)’라고 일괄적으로 지칭했을 뿐이다. ‘마들렌의 초상’ 경우도 1800년 살롱전에 출품했을 때 ‘네그레스의 초상(Portrait d’une Négresse)’으로 제목이 붙었다. 2000년 전시회에서 ‘네그레스’를 ‘흑인여성(femme noire)’으로 변경했다. 오늘날 오르세 미술관의 기획전에는 ‘마들렌의 초상’으로 다시 변경하여, 현대인의 시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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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의 유일한 프로모델, 조셉

노예제도는 1802년 나폴레옹에 의해 다시 부활되고, 이에 반대하는 아티스트들도 생겨났다. 바로 제리코(1791-1824년)의 경우이다. 1819년 완성된, 그의 유명한 화폭 ‘메두사호의 뗏목’은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이념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메두사호의 뗏목’은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을 소재로 한다. 1816년 7월 2일 북서아프리카 모리타니 앞바다에서 왕실군함 메두사호가 난파되고, 일부선원들은 뗏목에 몸을 은신했다. 하지만 한정된 물과 식량으로 뗏목 위에서 다시 아비규환이 발생했고, 최후 생존자는 불과 몇 명에 불과했다. 

제리코는 메두사호의 참사를 화폭에 담기 위해 3년가량을 연구하고 고심했다. 화실에 뗏목을 재현하여 설치했으며, 증언을 듣기 위해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 
화폭에서 뗏목의 광경은 피라미드형 구조를 지니며 가장 높은 곳 중심에는 상반신을 벗은 흑인이 붉은 천을 흔들고 있다. 쓰러져 죽어가는 다른 선원들을 구하려는 용맹스런 동작이자, 동시에 노예해방을 외치는 은유적인 의미를 담는 것으로 분석된다. 
흑인 모델은 조셉이다. 그는 제리코의 모델이 되기 전에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했다. 화폭에는 흑인 세 명이 등장하며, 조셉이 모두 각각의 포즈를 취했다.
이후 조셉은 샤세리오(1819-1856년)를 비롯하여 당대 다른 화가들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1832년 파리국립미술학교의 전속모델로 발탁됐는데, 19세기에 프로모델로 활동했던 유일한 흑인으로 간주한다. 
‘메두사호의 뗏목’은 노예해방이라는 정치이념이 담겨있어 당대 화제가 됐지만, 마네의 ‘올림피아(1863년)’처럼 세기의 스캔들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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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피아의 흑인하녀, 로르

마네의 ‘올림피아’가 동시대인들로부터 논란이 됐던 것은 파리 화류계를 소재로 다루면서, 여성의 성노예 해방이라는 당대의 첨예한 이슈를 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류계 여성의 하얀 피부에 하녀의 검은 피부, 검은 고양이를 대치시키면서 에로티즘마저 한껏 부각시켰다.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오르세에는 올림피아가 있다고 흔히 말한다. 세잔, 마티스 등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고갱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기획전에서 고갱의 모방품 ‘올림피아(1891년)’도 눈길을 끈다. 화폭은 오리지널보다 약간 작지만 영락없는 쌍둥이 올림피아이다. 마네의 ‘올림피아’는 모네의 공식요청이 받아들여 1890년 뤽상부르 미술관에 전시되고, 이때 고갱도 화폭을 감상하러 전시장을 찾았다. 이후 아틀리에서 모방작 ‘올림피아’를 완성했다. 그가 타이티 섬으로 떠날 때 모방작의 사진만 짐 속에 챙겨 넣었다. 이 사진을 타이티 원주민여성이 발견하고 올림피아가 애인이냐고 물었고, 고갱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일화이다.  

오늘날에도 ‘올림피아’의 패러디들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전시장 출구는 흑인하녀와 백인여성의 위치를 뒤바꿔놓았거나, 피부색을 반대로 바꿔놓은 현대작가들의 패러디작품들로 장식되어 있다. 말하자면 기획전시회는 마들렌의 초상화로 시작해서, 올림피아로 피날레를 장식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히로인은 백인여성이 아니라 흑인하녀이다. 마네의 수첩에서 흑인모델에 관한 신상을 적은 메모가 발견됐고, 이를 통해 이름이 로르(Laure)인 것을 알 수 있다. 로르는 바느질, 빨래 등 노동일을 하면서 간간히 포즈를 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로르는 마들렌과는 달리 화폭 속에서 한낱 투명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백인여인의 발밑에 놓인 검은 고양이처럼 들러리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로르보다 고양이가 더 화제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이번 전시회는 투명인간에 불과한 올림피아의 흑인하녀에게 로르라는 아이덴티티를 되찾아주고 있다. ‘네그르’ 혹은 ‘네그레스’로만 통용됐던 이들 모델들에게 마들렌, 조셉, 로르 등 각각의 이름을 되찾아준다는 데에 ‘흑인모델’ 기획전의 취지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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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로 군림했던 모델들

‘흑인모델’ 기획전에는 제리코, 샤세리오, 루소, 마네, 세잔 등 화가들의 모델뿐만 아니라, 나다르와 에티엔 카르자의 사진작품, 당대 프레스에 실린 각종 삽화나 데생에 등장하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모델들로 총망라한다. 19세기를 풍미한 연극배우 아이라 올드리지(1807-1867년)를 비롯하여 서커스단원, 댄서, 흑인 복서들이 모델로 대거 소개되고 있다. 20세기 두 세계대전 전후에 파리장안의 유명한 스타로 군림했던 조세핀 베이커(1906-1975년)도 전시회에 출전한다.

시인 보들레르의 유명한 연인이자, 시집 <악의 꽃>의 히로인이나 다름없는 쟌느 뒤발(1820-1860년대 사망으로 추정)도 매력적인 흑인혼혈 모델로 등장한다. 마네의 ‘쟌느 뒤발(1862년)’에서 모델은 화려한 하얀 드레스를 걸치고 있어 독특한 흑백 명암마저 깔린다. 1860년 쟌느 뒤발은 병마에 시달이던 터에 보들레르의 경제적 도움으로 보건소에 간신히 몸을 의탁할 수 있었다. 마네의 화폭에도 얼굴에는 질병이 도사려있지만 하얀 드레스를 걸친 자태에서 왕비 못지않은 당당한 위엄이 흘러나온다.

유명 아티스트나 작가가 흑인혼혈인 경우도 있다. 화가 샤세리오의 경우이다. 샤세리오는 흑인모델 조셉을 모델로 기용했는데, 이들은 프랑스 식민지령 생도맹그섬 동향출신이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흑인혼혈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 뒤마의 초상화, 나다르가 촬영한 사진, 당대 프레스나 잡지에 소개된 크로키, 데생들이 소개된다. 흑인혼혈의 윤곽을 과장하듯 뒤마를 그려낸 일부 삽화들에서는 인종차별주의적인 시각마저 깃들여있다. 
물론 마티스(1869-1954년)에게도 유명한 흑인혼혈 모델들이 여러 명 있다. 가령 1917년 작 ‘아이샤와 로레트’는 혼혈여성과 백인여성을 나란히 등장시킨 화폭이다. 혼혈모델은 아이샤 고블레(Aïcha Goblet). 1920년대에 마티스뿐만 아니라, 만 레이 등 파리 몽파르나스파 아티스트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모델이다. 게다가 아이샤가 모델로 등장하는 작품들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아이샤는 어린 시절을 유랑극단에서 보냈으며, 1914년부터 몽파르나스파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면서 인기스타로 부상했다. 1922년부터 파리장안의 무대에서 에로틱 배우로도 활약했다.
제리코부터 마티스에 걸치는 ‘흑인모델’ 기획전을 통해 시대적 흐름과 더불어 흑인모델들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이병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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