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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부르의 유명한 샹송 ‘릴라역의 개찰원(Le poinçonneur des Lilas)’은 파리 지하철 11번 포르트 데 릴라(Porte des Lilas)와 깊은 인연을 지닌다. 

‘나는 기차표에 구멍 뚫는 릴라의 개찰원,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며 시선은 던지지 않아, 땅 밑 지하에 태양은 없어…’로 시작되는 가사는, 당시 11번  종착역 포르트 데 릴라에서 승차권에 구멍을 뚫었던 직원의 삶과 애환, 꿈을 그려낸 노래이다. 
‘쁘티 투르(작은 구멍들), 쁘티 투르’의 반복적이고 건조한 가사는 리드미컬한 시적 운율로 승화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자아냈다. 1958년 무명가수 갱스부르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샹송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포르트 데 릴라와 갱스부르의 관계는 더욱 밀착되고 있다. 2010년 주변거리에 ‘세르주 갱스부르 공원’이 조성되었고, 2020년에는 지하철 11번 노선에 ‘세르주 갱스부르’ 역이 추가된다. 
포르트 데 릴라는 다른 샹송가수들에게도 영감을 고취시켰다. 
쟝-자크 골드만은 지하철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1980년대에 필립 팀싯(Timsit)는 ‘앙리, 포르트 데 릴라’라는 샹송으로 인기를 모았다. 이 샹송제목은 ‘라일락꽃을 든 앙리’로 직역될 수 있다. 

포르트 데 릴라와 연결하여 다른 불멸의 샹송가수를 들라하면 단연 조르주 브라상스(Brassens, 1921~1981년)이다. 그는 르네 클레르 감독의 1957년 흑백영화 ‘포르트 데 릴라’에서 ‘아티스트’ 역으로 출연했다. 브라상스가 생전에 출연한 유일한 영화작품으로, ‘아티스트’는 기타치고 샹송 부르며 소일하는 사회적 소외자에게 포르트 데 릴라 주민이 붙여준 별명이다.  

▶ 하필 포르트 데 릴라일까?

역사적으로 포르트 데 릴라(라일락 문)는19세기 중엽 파리를 동서남북으로 에워쌌던 17개 성곽 출입문들 중 하나였다. 1841년과 1844년에 실시된 일명 ‘티에르(Thiers) 성곽’ 공사에서 파리는 80km2의 면적으로 경계가 그어졌으나, 1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이 성곽은 사라졌다. 이후 파리외곽 순환도로가 건설되고 기존 17개 출입문 지역을 포함한 오늘날의 파리 경계선으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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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문 주변은 19세기 말엽부터 비누와 고무 제조공장들이 들어섰고, 주로 노동자와 빈곤층이 거주했던 파리 변두리 중에 하나로 꼽는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포르트 데 릴라 근처에 ‘시네마(cinéma)’ 지하철역이 있다는 사실이다. ‘시네마’역은 1939년 폐쇄되어 파리 지하철의 지도에서는 삭제됐지만, 영화 촬영장소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흥행대박의 신화를 새로 쓴 영화, ‘아멜리 풀랭의 환상적 운명(2001년)’에서 몽마르트 거리의 12번 아베스(Abbesses)역이 등장하는데, 사실은 시네마역 세트장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 고전영화의 진수 ‘포르트 데 릴라’

르네 클레르 감독의 ‘포르트 데 릴라’는 이곳 변두리동네 주민들의 일상을 담는다. 주요 장소는 주민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길모퉁이 ‘알퐁스네 카페’,  사회에 반항적이고 이상향을 지닌 ‘아티스트(브라상스 역)’가 샹송을 부르며 소일하는 곳이다. 또한 그가 혼자 사는 낡은 판자집도 사건 전개에 중요한 무대가 된다. 

늙은 홀어머니 집에 얹혀살며 무위도식하는 ‘주주(Juju)’는 아티스트의 집과 알퐁스네 카페를 들락거리며 은근히 카페주인의 딸 마리아를 짝사랑한다. 카페에서 허드렛일을 돕는 마리아로 말할 것 같으면, 아티스트의 샹송을 감상하며 따분한 청춘을 달래는 감성이 풍부한 아가씨이다. 

아티스트, 주주, 마리아의 존재감이라는 것은 1950년대 가난한 변두리 동네가 지니는 독특한 구도 속의 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주주의 경우 개구쟁이들의 조롱감이 될 정도로 변두리 마을에서도 외면당하는 아웃사이더였다. 

주주는 알퐁스네 카페에서 술을 몰래 훔쳐 마시다 주인에게 들켜 망신당한다. 그러자 너무 치사스럽다며 다시는 카페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노라고 큰소리치고, ‘자네는 어제도 똑같은 말을 했어!’ 라며 카페주인은 빈정거리듯 쏘아 붙인다. 카페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은 ‘바로 내일부터’라고 끝까지 맞장구치는 주주….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아티스트는 주주를 따라 밖으로 나오며 자기네 집에서 한잔하자고 권한다. 

반쯤 마시다 남은 싸구려 포도주병 앞에서 주주는 자신을 인간으로 취급해주는 마을사람은 오직 아티스트뿐이라고 기분 좋게 흥얼거린다. 그런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포도주병을 그만 탁자 밑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울상이 되어 빈 잔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주주, 그의 앞으로 아티스트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내밀고, 주주는 체면상 일단 사양, 아티스트는 재차 권고…. 마지막 남은 술잔을 훌쩍 비워버린 주주는 자신은 하찮은 인간이라는 자학에 빠져든다. 살아야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라 당장 목을 매달아 죽겠노라고 울먹이는 주주에게, ‘자네는 어제도 똑같은 말을 했다네!’ 라고 아티스트는 넌지시 말을 던진다. 그러자 ‘목을 매는 일은 내일로 미루겠어!’ 라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주주…. 슬프고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코믹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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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변두리 인생에게 샤르트르나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과 버금가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포르트 데 릴라에 갱스터가 스며들어 마을을 벌컥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한 때문이다. 경찰은 악당을 체포하러 마을을 포위하고, 샹송만이 나른하게 흘러나오던 동네는 호기심과 서스펜스로 들썩거린다. 
아티스트와 주주의 삶에 복잡함이 찾아든 것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여 악당 바르비에가 숨어든 곳이 다름 아닌 아티스트네 집의 지하였기 때문이다. 바르비에는 거리를 탈출하지 못하고, 아티스트와 주주는 악당을 경찰에 신고 못하는 상황에서 온갖 해프닝이 벌어진다. 
뻔뻔한 근성에 젊고 잘생긴 플레이보이 바르비에의 출현은 곧 아티스트, 주주, 마리아의 삶에 각각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4각 관계에서 빚어는 긴장감, 서로의 가치관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마찰이 야기되면서 각자 세상을 향해 품는 휴머니즘에도 독특한 색깔이 첨가된다. 이들만의 우정, 사랑, 정의, 진실, 배신과 죽음이라는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웃음과 해학으로 끌어올린 고품격 정통 코믹영화의 진수마저 보여준다. 

느리고 어눌한 말투의 극중 인물 ‘아티스트’는 샹송가수 브라상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다. 값싼 감상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내정함과 의리를 지키는 깊은 인간미를 풋풋하게 살려냈다. 주주 역의 피에르 브라세르(Brasseur, 1905~1972년)는 과장되지 않은 연기력, 내공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런 내면연기로 브라상스와 멋지게 호흡을 맞춘다. 살짝 촌스러운 마리아로 말할 것 같으면, 개성 없는 성형미인, 영혼 없는 인형 같은 팔등신 미녀에게 식상한 이들에게 자연미에서 발산되는 매력에 유감없이 빠져들도록 한다.  

한편 포르트 데 릴라 마을주민들이 악당의 행방으로 온통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개구쟁이들은 경찰과 바르비에, 두 패로 나눠 경찰놀이를 즐긴다. 완벽한 예술적 극치를 보이는 거리공연이나 다름없는 스펙터클이다. 동시에 1950년대 파리 변두리의 거리풍경이 어떠했는지도 감상하는 색다른 매력을 안겨준다. 

오늘날 포르트 데 릴라를 포함한 파리 변두리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눈부신 상업지구로 변신했다. 따라서 옛 변두리 판자촌 풍경과 당시 서민들의 옷차림을 감상하는 일도 고전영화 ‘포르트 데 릴라’를 통해 즐겨보는 묘미이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이병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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