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위키페디아
작가 : 쟈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Paris, 1748 - Bruxelles, 1825)
제목 :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시대 : 1806 - 1807
크기 : H. : 6,21 m. ; L. : 9,79 m.
분류 :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전시 장소 : 루브르박물관 드농관1층 Salle 702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나폴레옹 1세가 주문한 이 작품은 다비드가 성대한 대관식 장면과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그의 메시지로 완성하였다. 대관식을 본 목격자로서 다비드는 화려하게 치장한 관중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하고 황제의 의도도 잘 반영 해야 한다. 아뜰리에 작업을 하면서 기록 유산의 가치와 예술 작품 사이에서 절충도 해야 한다. 영광의 대관식을 웅장한 대작으로, 미술사에도 남는 독보적 작품으로도 남겨야 하는 과제를 안은 것이다.
이중 대관식
이탈리아와 이집트 원정 이후 군의 영광을 한 몸에 받은 나폴레옹은 부뤼메르18 쿠데타 이후 절대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1804년 5월에 황제에 등극하고, 왕위의 정통 계승을 위해 그해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그의 대관식을 준비한다. 왕정 시대의 프랑스 카톨릭 전통은 고수한다. 게다가 1000년 전 샤를만 황제처럼 교황에게 황제 대관식을 받는다. 그렇지만 교회 권력과 단절을 위해 나폴레옹은 혼자 왕관을 쓴다. 다비드는 먼저 나폴레옹을 혼자 왕관 쓰기 자세로 묘사했고, 그다음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우는 것으로 그렸다. 이 자세로 황제는 덜 권위적이고, « 프랑스의 기사 »처럼 더 고결해 보이는 인상을 준다.
역사와 예술의 만남
큰 틀을 잡기 위해, 다비드는 루브르박물관 소장의 루벤스가 그린 마리 드 메디치의 대관식 그림을 참고했다. 대관식에 실제로 참여해 연구했으며, 참여 인물 대부분을 모델로 세우게 했다. 이 작업을 위해 특별 아뜰리에가 따로 마련되었고, 골판지로 만든 모형과 밀랍 인형의 도움으로 장면 구성을 잡아갔다. 비중 있는 인물은 화면 중앙에 배치하고 밝은 빛으로 조명하여 다른 이들과 차이를 두었다. 황제 부부 주위에 둘린 아치형이 장중한 배경이 되고 반짝이는 부부를 군중이 에워싼다. 오른쪽으로 추기경과 대주교 사이에서 교황이 보인다.
화면 전경에 등과 3/4 비율로 보이는 황실 핵심 고관들이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독수리 왕홀, 정의의 손이 달린 왕홀과 수정 원구를 각각 들고 있다. 나폴레옹의 두 형제와 두 누이는 화면 왼쪽에 보인다. 후경 상부 관람석에 나폴레옹의 어머니가 크게 보인다. 모든 시선이 대관식을 향하고 있다. 대관식 장면이 잘 보이게 화가는 녹색 커튼 자락을 벽기둥에 고정했다. 무릎을 꿇고 실제보다 더 젊어 보이는 조세핀의 얼굴이 왕관용 쿠션을 든 뮤라 앞, 십자가를 든 성직자의 황금빛 제의 속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벨벳, 밍크, 비단, 금실, 은실로 수 놓은 예복과 가구에서 화려한 채색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림 속으로 거닐다.
화려한 옷의 누이, 성직자, 나폴레옹의 가족이 다 모인 그룹 초상화로 완벽한 사실주의를 구가한다. 그래도 화가는 역사와 전통에서 약간 외도를 한다. 인물을 더 강조하기 위해 노트르담 성당 내부 전경은 축소시켰다. 나폴레옹의 어머니인 라에티시아 보나파르트는 대관식에 참여 하지 않았지만 아들의 뜻으로 그림에 등장 했다. 교황이 세례하는 자세는 처음에는 무릎 위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나폴레옹의 뜻으로 수정했다. 세 명의 누이를 부동자세로 표현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조세핀의 긴 드레스 자락을 잡고 있었다. 매력적인 영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작에서 꼭 필요했던 이러한 선택에 나폴레옹은 이렇게 극찬했다. "훌륭한 입체감에 훌륭한 사실주의다! 이것은 그림이 아닌 현실로, 우리가 그림 속으로 거닐고 있다". 앞으로 본인 그림이 얼마나 중요해질지 감지한 다비드는 그의 그림과 영예를 이렇게 연결 지었다. "내 영웅의 그늘 아래 나는 영예로워질 것이다".
글 : 한미숙 mms7han@yahoo.com
현재 파리 미술사 연구소(Since 2014) 대표
파리 쉽게 배우는 서양미술사 7년 강의 중
본 내용은 루브르박물관 자료를 발췌하여 번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