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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칼럼
2020.10.01 10:21

문화인류학자의 눈에 비친 북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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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란 게 무엇인가?

 

“산간지역 아이와 산모들의 요오드 부족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의사들과 회의를 하는 중에 젊은 연구자가 한마디 했다. 아이들의 영양발육 문제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남한 구호 전문가들의 진심을 느꼈는지 불쑥 전해준 말이었다. 바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유아기의 요오드 결핍은 갑상샘 호르몬 문제를 일으켜 두뇌 발달과 신체 발육을 부진하게 한다. 임산부에게 요오드가 부족해도 유산이나 조산 위험이 커지고 태아와 모유를 먹는 영아의 뇌손상을 유발해 청각장애와 발육 지체의 원인이 된다. 두뇌 성장과 신체 발육의 경우 일단 문제가 생기면 나이가 들어서 영양을 공급하고 치료를 해도 회복되지 않는다. 아기를 출산한 산모에게 미역을 먹도록 한 것은 이런 문제를 예방하는 전통문화의 지혜였다. 

 

남측 의사와 구호 전문가들은 현지에서 긴급히 따로 회의를 하고 산간지역 아이들의 요오드 결핍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다음 회의 때 이 문제를 제기했던 연구원은 나오지 않았다. “교육 갔다”고 했다. 사실 그 연구원이 새로운 사실을 누설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2002년 유럽연합, 유니세프, 북한 당국의 공동조사 당시 산간지역 아동 중 19%가 심각한 요오드 결핍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발표까지 했다. 그러나 기근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에 묻혀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관련 정부부처와 각계에 요오드 결핍 문제를 알리고 지원방안을 모색했지만, 실제 지원항목에서는 늘 누락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그 문제는 잊혀 갔다. 

 

그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후 10년이 지난 2012년 초, 탈북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있던 교사가 한숨을 쉬며 하소연을 했다. “요즘 도착하는 아이들 중에는 아주 심한 학습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오래전 말씀하셨던 유아기 요오드 결핍 후유증 아닐까요?” 그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은 성장발육 문제가 있어도 인지능력은 괜찮아서 잘 알아듣고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2~3년 전부터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지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4년생 열여덟 살 청년이 1km가 1000m면 2km는 몇 미터인지 전혀 유추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단순히 학습경험이 부족했던 이전의 영리한 꽃제비 출신들과 너무 달라서 답답하다고 했다. 그런 아이들은 대개 키도 작고 쉽게 피곤해하며 몸도 아주 빈약하다는 것이다. 

 

“아! 드디어 그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힘겨운 인생길이 떠올라 막막했다. 요오드 결핍뿐만 아니라 철, 아연 등 필수 미량영양소 부족은 미역, 김, 다시마와 같은 해초나 천연소금을 조금만 먹어도 충당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10년이 지난 후, 그렇게 어려움을 겪은 아이들이 15~20세의 청년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절박한 마음에 다음과 같은 신문칼럼을 써서 남해의 미역을 함경도 아이들에게 보내자고 긴급지원을 촉구해보기도 했다. 

 

“요오드는 필수 미량 영양소이기에 아주 적은 양만 부족해도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킨다. 동시에 아주 적은 양만 공급해도 더는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충족된다. 해법은 간단하다. 남·서해안에는 해초가 풍부하다. 말린 해초는 모아서 운반하기도 좋고 오래 보관하기도 쉽다. 군사적 의미도 없다. 남해안의 미역, 서해안의 김과 소금을 함경도, 평안도의 산골까지 보내자. 결국 이 땅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남북의 자연과 사람의 정성을 온몸에 받고 자라는 건강한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 

 

그러나 나의 소박한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핵실험까지 하면서 아이들에게 아주 미량만 있으면 되는 필수 영양소도 못 챙겨주는 북쪽 권력은 통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럼 남쪽 어른들은 그동안 이 아이들을 위해 뭘 했나? 남과 북의 정부 당국은 이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다. 2003년 봄부터 전문가들은 비교적 간단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바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큰 정치를 하는 어른들에게 작은 아이들의 미량 영양소 문제는 긴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던 듯하다. 큰 문제가 풀리면 자연히 풀릴 일이라고 큰소리만 했다. 그러는 동안 20년이 지났고, 아이들은 장애를 가진 채 자라났다. 정치 탓만 할 수는 없다. 남과 북의 관료주의는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늘 체면을 앞세웠다. 남한 민간단체들도 권력의 과시성 요구에 맞춰 큰 프로젝트, 큰 건물, 큰 행사를 우선했다. 

 

남한 정치와 관료주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어려움을 줬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통해서 ‘인도주의적 지원’은 막지 않겠다고 늘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물자를 준비해놓고 허가를 받으러 가면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서류를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최악의 경우는 마흔 번 넘게 다시 신청하도록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불가능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남북관계를 핑계로 무조건 보류시켰다. 인천항 보세창고에 묶여 있던 북한 영유아들을 위한 조제유 원료와 설사약, 수액재료들이 유통기한이 지나서 폐기 처리되는 일까지 있었다. 

수많은 남한 사람들의 염려와 정성이 그렇게 중도에 막히거나 버려졌다. 그사이에 많은 북한 아이들이 스러지고 시들어갔다. 이 작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더 절실하게, 더 열심히 노력하지 못한 남과 북의 모든 어른들 탓이다. 아니, 내 탓이다. 

 

영하 20도의 두만강가에서 만난 아이

 

21세기를 며칠 앞둔 추운 겨울날 중국 투먼시를 방문했을 때였다. 영하 20도의 두만강가에서 탈북상황을 조사하고 있었다. 허름한 차림에 기침을 하는 아이가 문가를 기웃거리기에 안으로 들였다. 함흥에서 온 아이였다. 중학생처럼 보여도 나이는 열여덟살, 곧 군대에 갈 거라고 했다. 아픈 아버지를 놔두고 그냥 입대할 수가 없어서 미국에 사는 고모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일주일 전에 강을 건너왔단다. 1·4후퇴 때 남쪽으로 간 고모는 미국 뉴저지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족 브로커의 도움으로 몇 차례 전화를 걸어 급히 돈을 부쳐달라고 해봤으나 거절당했다. 돈 받을 전망이 없자 그 집에서도 쫓겨나 길바닥에서 사흘을 헤매다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이다. 

 

“가족이란 게 이런 건가?” 아이는 열에 뜬 얼굴로 한 마디 한 마디 어렵게 말하면서 어른스러운 한숨을 몰아쉬었다. 북쪽의 선전과 달리 미국이나 남한이 잘산다는 것을 알아도 속인 국가보다 당장 도와주지 않는 잘사는 가족이 더 원망스러운 듯했다. 도저히 그런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자세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작년(1998년) 여름에 미국 사는 고모 셋이 연길까지 와서 북한에 남았던 오빠와 며칠간 상봉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 날 고모는 눈물로 헤어지면서 앞으로 백두산 관광도 할 겸 또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고향에 돌아와 병에 걸린 아버지가 그렇게 만나러 오느니 차라리 여비 할 돈을 생활에 보태게 보내 달라고 하자 그때부터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두만강을 건너와서 잘사는 중국, 더 잘사는 남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지만, 자신은 병든 부모와 어렵게 사는 ‘가족’ 때문에 바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뜨거운 국밥을 사주며 보니 양말 바닥에 앞뒤로 큰 구멍이나 있었다. 마침 두 겹 신고 있던 양말을 한 겹 벗어주었다. 한밤중에 삭풍이 몰아치는 두만강가에 나서니 여윈 몸에 얇은 잠바가 헐렁해 보였다.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어 주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것이라 잠시 망설이긴 했다. 

칠흑 같은 그 밤에 병든 몸으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남았다면 부모님 곁에 돌아가 인민군에 입대했을 것이다. 그 아이의 기침 소리를 생각하면 그 밤에 내 두꺼운 파카를 벗어 주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 

 

연민과 공감이 만드는 ‘한민족’의 유대

 

추운 날이면 더 심한 추위를 겪고 있을 북쪽의 주민들이 생각난다. 땔감이 없어 나무뿌리를 캐서 나르던 고단한 행렬이 떠오른다. 영양이 부족하면 사소한 감기도 치명적인 병이 될 수 있다. 그들에게 추위는 단순히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다. 우리 이웃의 범위가 연탄을 때는 달동네 주민으로부터 내복 한 벌이면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북녘 동포들에게까지 넓어지기를 바란다. 

정치 전략과 인도적 지원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전투 중에도 적군의 부상병을 돌보아주는 일에서 적십자운동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인도주의다. 주고받는 것을 계산하는 장사나 정치가 아니다.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들을 만나고 온 후부터, 가뭄이 계속되면 지하수도 없는 북한의 논밭이 염려되고, 폭우가 쏟아지면 민둥산 다락밭이 쓸려 내려갈까 걱정된다. 올해처럼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오랜 장마와 물난리를 겪고 보면 25년 전 큰 물피해로 시작된 북한 대기근의 참상이 떠오른다. 바로 이어진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을 염려할 때 우리는 서로 ‘한민족’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연민과 공감이 우리를 다시 ‘한민족’으로 묶어줄 것이다. “민족이란 게 무엇인가?” 두만강가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묻던 깡마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어진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을 염려할 때 우리는 서로 ‘한민족’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연민과 공감이 우리를 다시 ‘한민족’으로 묶어줄 것이다.”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남유럽협의회 주관으로 문화인류학자이자 오랜 기간 북한동포돕기와 다문화지원사업을 이어온 정병호 한양대 교수가 만난 북한의 모습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출처 : ‘통일시대’ 166호

- 글쓴이 : 정병호 /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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