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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2019.01.31 11:18

예술로서의 그래피티와 반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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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를 거닐다 보면 건물 벽면에 짧은 문장과 함께 그려진 낙서 그림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떤 낙서화는 깊이 생각을 하게 하는 촌철살인적인 문장과 함께 철학적인 그림들도 많아 가던 길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이러한 낙서화들을 단지 낙서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떤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파리 시내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거리에서 낙서화는 이제 일상이 되어 보행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을 갖고 있다. 
낙서화를 그래피티(graffiti)라고 하는데 이는 낙서가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고 유럽에서는 이미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래피티란 말은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에 어원에서 온 용어로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린 그림으로 ‘스프레이캔 아트’spraycan art’ ‘aerosol art’라고도 부른다. 
이 즉흥적이고도 기발한 그림들은 1960년대 말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소수민족과 젊은이들이 억눌린 열정을 표출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기 위해 혹은 재미삼아 벽에 문자와 그림을 그린 것이 오늘날의 그래피티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 기원은 고대 동굴의 벽화나 이집트의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낙서에 가까운 그림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피티가 예술로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터이다. 세계적인 화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장 뒤뷔페(Jean Dubuffet) 등의 화가들은 아웃사이더 아트로서 낙서의 의미에 큰 관심을 갖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수십 명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독특한 표현으로 그렸던 뉴욕 퀸즈의 5 Pointz 건물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랜드마크가 되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건물이 되어 관광버스까지 다녀갈 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아파트 재건축 계획으로 동원된 일꾼들이 5 Pointz의 그래피티들을 흰 페인트로 덮어 법정에서 최고금액 675만 달러의 벌금형을 내린 사건도 있었다. 이 시대에 그래피티는 당당히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을 받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문화예술을 훼손•파괴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을 반달리즘이라 한다. 이것은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반달족(Vandal)이 서로마 제국을 침공하면서 각종 문화유산을 파괴한 데서 유래한 말로, 예술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고대 로마 건축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반달족보다 르네상스인들이 더 많이 훼손했다. 그들이 동경한 고대 그리스•로마와 비슷한 건축물을 지으려고 고대 유적의 기둥을 마음대로 빼다 쓰곤 했다는 것이다. 

반달리즘의 주체들에게 그것들은 그냥 ‘물건’일 뿐이다. 사실 옛 유적과 유물이 보호받아야 할 역사의 증거물이자 예술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근대 이후로, 예술의 개념이 생기던 시점과 비슷하다. 
한국의 경우 2008년 일어난 ‘숭례문 방화 사건’이나 공공 미술품인 조각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사건도 일종의 반달리즘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노란 조끼 운동으로 인해 에투알 개선문이 낙서당하기도 했고 개선문 안에 있는 마리안상이 파괴당하기도 했다. 

최근 파리의 그래피티 예술가로 알려진 뱅크시Banksy가 2015년 11월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일어난 테러로 인한 비극적 사건을 그래피티로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렸던 벽화를 도난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아트 테러리스트’라고도 불리는 Banksy의 작업은 주로 기존 권위에 대항하며 정치•사회를 때론 재치 있게, 때로는 잔인하게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스텐실 기법을 사용하여 화염병 대신 꽃을 투척하고 있는 시위대의 모습, 우스꽝스러운 핑크색 리본을 달고 날아가는 전투기의 모습 등을 벽 위에 남기며, 현대사회에 대한 여러 이슈들을 그래피티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그래피티 속에 유머를 가미하여 무거울 수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재치 있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되새기며 진정한 공공미술로서 그래피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독특한 그래피티 작가로 알려져 있다. 

거리예술이라는 낙서화를 반문화적이고 문화파괴 행위인 반달리즘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없다. 예술로서의 그래피티는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고, 그것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시비거리가 된다. 
뒤샹이 1917년에 변기를 ‘샘’이란 명제로 전시장에 내놓았던 도발적인 ‘레디 메이드’ 오브제가 ‘파란’을 일으켰으나 지금은 당당히 예술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듯, 그래피티 역시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시대이다. 
모든 표현 행위가 예술이란 이름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 개념과 해석이 점점 방대해져가는 ‘현대’라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정택영 / (파리 거주 화가, 칼럼니스트)
Takyoungj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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